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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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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력
2007.03.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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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에도 살았으면 좋을 성 싶은 남자. 입가에는 미워할 수 없는 소년의 미소가 걸려 있고, 가녀린 목선을 들어 올릴 때면 귀족의 품위도 함께 느껴진다. 게다가 바람 불 때마다 붕 뜬 고수머리는 딱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자랐다. 이 남자. 휴 그랜트.

1960년생으로 고딩들은 ‘우리 아빠 나이라며?’하고는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지만, 스크린에서 아직까지 단 한번도 유부남 역할을 해 본적이 없다. 바로 이 남자가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지존이시란다.

미국 여배우를 흠모하는 수수한 책방 주인이든, 통통한 식음료 담당관에게 시선을 빼앗긴 영국 총리 역할이든, 심지어 브리짓 존스에서처럼 음흉한 미소를 띈 바람둥이 악역이든 여자들은 이 총각만 나타나면 갑자기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린다. (실은 여자들이라기보다 내가 그렇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음지가 없다.

속살과 마음 모두가 와이셔츠 색깔과 똑같은 순백색일 것만 같고, 다소는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모성 본능을 자극하면서도 세련되고 가볍다. 세상 근심이 그의 웃음꼬리만 보면 모두 사라진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이 남자.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왕년의 그가 엘리자베스 헐리라는 기가 막힌 여친을 두고도 창녀와 놀아나다 발각된 망신살 뻗친 이야기며, 끝끝내 결혼이란 수갑에 기름칠을 하며 요리조리 내빼는 바람둥이에다, 런던에만 집이 17채 있는 욕심 많은 사내라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까먹는다. 그리고는 그가 <미스터 빈> 의 로완 앳킨슨과 동일한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 같은 것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

솔직히 이 사내는 최근 들어 ‘휴 그랜트+잘 나가는 미국 여배우=로맨틱 코미디의 보증수표’라는 등식을 새로 수학 교과서에 집어 넣어야 할 것처럼, 매해 미국 여배우들과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상대가 드류 베리모어라니.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커플은 정말 둘 다 똑같이 가볍고 천진하다. 아마 올해 미스 미스터 귀여움 커플을 선정하라면 푸들 한 쌍과 이들의 이름도 반드시 거명되어야 할 것이다.

아! 왜 이 둘이 아직까지 못 만났던 거지. 사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은 이 두 사람이 공연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특별함도 찾아 볼 수가 없는 종류의 영화다.

그래도 난 오늘 이 남자를 보러 극장에 간다. 한물간 록가수 역할을 하며 우스꽝스럽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대는 그를 보면서,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쯤이야 보톡스가 해결해주겠지 라고 굳게 믿게 된다.

휴~~우 그랜트. 그의 이름만 부르면 이렇게 한숨이 날 것 같지 않은가. 절대 이 남자 만큼은 늙지 말라고. 그가 전해주는 솜사탕 같은 연애의 단물이 마르는 날, 뭇 여성들 가슴에 접힌 로맨스의 한 장도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므로. 언제나 그의 이름은 한 호흡이 멎는 휴~~우 그랜트지 뭐.

영화평론가 × 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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