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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의 애니깽 후손들 "기술코리아 전도사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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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의 애니깽 후손들 "기술코리아 전도사 될래요"

입력
2007.03.05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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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아 세르 엘 메호르!(최고가 될 겁니다)”

27일 인천 부평구 구산동의 한국폴리텍2대학 내 산업인력공단 국제인적자원개발(HRD)센터 대강당. 1905년 지상낙원을 꿈꾸다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 등에 노예로 팔려간 애니깽(Henequen) 3~5세 후손들의 이색 수료식이 열렸다. 애니깽은 밧줄 등의 원료로 쓰이는 용설란의 일종으로 이민 1세대들이 처음 이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한 세기를 보낸 탓에 이들은 대부분 큰 코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졌지만 한인이라는 자부심은 대단했다. 6개월 동안 정보기술(IT)과 전자전자제품 수리, 자동차 정비, 배관ㆍ용접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직업훈련을 받은 이들은 한국인 선생님들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를 다짐했다

이들은 가난 때문에 멕시코로 이주했다가 일제침략으로 발이 묶인 선조들의 한 맺힌 역사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때문인지 하루 8시간씩 빡빡하게 진행된 교육과정 내내 모국에서 기술을 하나라도 더 익히려고 최선을 다했다.

직업훈련은 멕시코 한인 이주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으며 재외동포재단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으로 2010년까지 매년 30명의 후손들이 초청돼 직업훈련과 함께 한국 문화와 말을 배우게 된다.

29명의 대표 사우시 리(27)씨는 수료식에서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선진기술과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 준데 대해 감사하다”며 “한인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 산체스(28ㆍ여)씨는 “경북 경주 출신인 증조부(최문선)가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다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도 귀국을 원했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며 “이제야 내가 그 한을 푼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우리 선조들은 노예처럼 일해서 받은 3페소 남짓한 월급에서 1, 2페소를 떼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들었다”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잊지 않고 모국에서 후손들을 이렇게 초청해 고맙다”고 말했다.

한인 후손답게 이들은 모국과 한국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다. 아시아 정(18ㆍ여)씨는 “한국인 선생님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꼬치꼬치 물어가며 한국어를 배웠다”며 “멕시코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 동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인 후손들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멕시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어 교육시설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호르헤 나시프(29)씨는 “6개월동안 배운 기술과 함께 그 동안 보고 들은 한국의 모든 것을 이번에 오지 못한 한인 후손들에게 전하겠다”며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초면 한국을 떠나는 이들은 모국에 대해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경기 용인의 한국민속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카를로스 안토니오(25)씨는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집에서 전통음식을 먹으면서 새삼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이에서‘한국’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사물놀이를 비롯한 전통문화 감상 기회를 자주 마련하는 등 한국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도와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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