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무력감으로 괴로워한 적도, 거대한 바위에 머리를 들이받는 듯한 외로움에 밤잠을 설친 날도 있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했던 문영호 수원지검장은 27일 검사직 수행과정에서의 부담감을 퇴임사에 절절히 표현했다. 문 지검장뿐이 아닐 것이다. ‘거악 척결’이라는 명분과 방법 사이에서 검사들의 고민은 숙명과도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고민이 명분에 치우치면서 방법상의 일탈을 간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거짓진술 유도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정도를 벗어난 수사 관행은 이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수사 방식의 완전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마침 30년 가까운 검사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원로들이 후배들에게 검찰권 행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고 나섰다. 임승관 대검 차장은 27일 퇴임사에서 “과욕을 부리거나 오만할 때 검찰에 대한 반감은 되살아날 수 있고 검찰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 내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국민이 검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문 지검장도 “수사 활동은 그것이 법테두리 내에 있다 해도 인권에 대한 제약을 내포하고 있어 항상 남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 점을 인식하면서 국민을 편하게 하고 법과 정의를 지키는 검찰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이 검찰을 떠난 지 하룻만에 대검찰청은 인권강화와 합리적 수사를 요체로 하는 수사방식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구체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모쪼록 검사들이 이 방안과 선배들의 충고를 ‘칼과 저울’로 삼아 명분만큼이나 방법도 중시하는 수사 관행을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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