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 덕이다. 그러나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과 박 의원은 노 대통령을 빼닮은 노 대통령의 거울 이미지이자 한나라당의 노무현들이다.
박 의원이 노 대통령의 가슴을 닮았다면 이 전 시장은 노 대통령의 입을 닮았다. 한마디로, 언제 무슨 말을 해 사고를 칠지 모르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다."
● 이명박 전 시장의 초대형사고
지난주 바로 이 지면에 썼던 "거울 이미지"라는 칼럼의 일부이다. 이 글이 나가고 이틀 뒤 이 전 시장이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요즘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인데,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말한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70-80년대 자신과 같이 대기업에 들어가 경제활동을 하거나 군사독재에 들어가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인가 본데, 그들이 70-80년대 빈둥빈둥 놀았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이는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열사들, 그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친 결과 이 전 시장과 같은 경제력을 만들지 못해 어렵게 살고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모독 중의 모독이다.
긴말이 필요 없이, 지금은 이 전 시장의 10분의 1도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피로 쓴 고문회상록을 읽어주고 싶다. "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 고문이었습니다.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빠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를 위해 처절하게 싸운 것이 어떻게 빈둥거린 것인가?
그러나 이전시장의 발언을 전해 듣던 순간, 가장 강하게 엄습한 것은 나의 글이 적중했다는 통쾌함도, 이런 망발을 할 수 있나 하는 분노도 아니었다. 오히려 글을 잘못 썼다는 자괴감이었다.
문제는 이 전 시장의 입이 아니라 머리, 아니 총체적 삶이었다. 그런데 하찮은 입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말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이처럼 한심하고 소름 끼치는 사고방식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는 것을 입이 이 전 시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떠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전 시장의 발언 뒤에는 민주주의, 인권으로부터 순수 학문과 문화적 창작활동 등 가시적인 생산활동이 아닌 활동들은 모두 불필요한 비생산적인 활동들이며 빈둥빈둥 노는 것이라는 무서운 사고방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사고방식이 진시황과 히틀러의 분서갱유를 가져다준 바 있다.
● 소름끼치는 역사의식이 문제
이 전 시장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화운동세력에 비판적인 조중동과 함께 이 전 시장이 가장 많이 빚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70-80년대 빈둥빈둥 놀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조중동이 현재처럼 대통령과 집권 민주화운동세력을 제멋대로 난도질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는 아예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민선 서울시장 이명박과 청계천 신화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박정희, 전두환 식으로 체육관에서 육사출신 대통령을 뽑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되겠노라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 운운하는 헛소리를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중의 한 명으로서 이 전 시장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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