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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He & 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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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He & She'

입력
2007.03.0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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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극장은 ‘기성연극의 상업화와 기업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면서 새로운 연극이념과 방법 등을 찾고 실험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소극장은 기획사들이 관객몰이를 위해 장기대관으로 선점하는 곳이 되었다. 지난해 12월부터 금년 7월까지 극장을 확보해놓고 장기공연에 돌입한 한 연극이 있다.

<70분간의 연애>의 속편 격인 (He & She). 이 연극이 꾸준히 객석을 채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 나이트 스탠드’를 마다 않는 사랑의 속도전 시대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세대가 간직하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확인하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인가. 대중연극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흥미로운 면면이 눈에 띈다.

연극은 한국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의 구도를 띠고 있다. 두 남녀가 15년 동안 친구로 지내다가 술기운을 빙자해 선을 넘은 다음날 서먹한 만남을 생중계한다. ‘비극은 죽음으로 끝나고, 희극은 결혼으로 끝난다’는 정의에 걸맞게 청혼에 다다르는 희극이다.

15년이라니, 시간의 주름에 얼마나 많은 때가 끼었겠는가. 남녀의 우정 사이에 끼어 들 법한 갈등과 오해, 끌림과 주저 등 긴 사연을 잘 압축해 탁구공처럼 경쾌하게 던진다.

이 말들의 공방전이 ‘장소팔 고춘자’ 식의 만담에 필적한다. 무엇보다 생생한 캐릭터 구축에 힘입어서다. 어눌한 시나리오작가 남자(하성광 역)와 내숭을 잘 떨면서도 성질 급한 여자 변호사(서정연 역)의 개성과 직업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일종의 ‘머슴’과 ‘공주’의 결합이라는 연애의 남녀 간 권력관계, 그 전도된 희극성을 잘 끌어냈다.

마임이스트 장성익이 연기하는 ‘주인으로 오인 받는 웨이터 아저씨’ 역할은 이강백 작 <결혼> 의 ‘하인’ 계보를 잇고 있는 듯해서 흥미롭다.

‘시간’이라는 알레고리의 무게를 벗고, 유희적이고 기능적으로 대사 한마디 없이 공연 전반의 리듬을 조절한다. 이 인물은 재치문답에 점령될 연극의 속도에 휴지(休止)의 순간을 제공하고, 신체적 에너지를 확장한 몸의 움직임으로 사실적인 카페 세트에 비일상성을 창조하는 미묘한 효과를 낸다.

소극장은 이제 앙드레 말로가 이야기한 현대인의 ‘단지 인간 밖에는 되지 못하는 처절한 아픔’을 반어적으로 확인하는 장소가 되어가는지 모른다.

신도, 영웅도, 의인도 없는 보통 사람의 일상과 감성의 모방만으로 가능한 우리 시대의 연극…. 아우라나 카리스마가 아닌 일상성의 구체적 재현과 친근함이 우선되는 연기술이 핵심 요소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차근호 작, 김동연 연출, 3월 4일까지 대학로 행복한소극장, 3월 8일부터 4월 1일까지 부산 가막골 소극장.

극작 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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