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분 지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268쪽ㆍ1만3,000원
<애국가> 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안익태(1906~1965)는 오랫동안 위인전 속에 갇혀 있었다.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새로운 자료가 속속 발굴되면서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연구는 급진전했지만 동시에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만주국 축전곡> 을 지휘하는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만주국> 애국가>
1938년 아일랜드에서 <한국 환상곡> 을 초연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고, 부다페스트의 리스트 음대 학적부 출생지란에 ‘평양, 조선’이라고 적었던 안익태가 왜 불과 몇 년 후 일장기 앞에서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게 됐을까. 한국>
음악학자인 저자는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베를린과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방문해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안익태와 <한국 환상곡> 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린다. 한국>
저자는 안익태의 독일 활동은 일본과 독일의 교류단체인 ‘일독회(日獨會)’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안익태는 일본인 ‘에키타이 안’으로서 일본 제국의 음악 대사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안익태는 1941년부터 일독회 주최 음악회를 통해 경력을 쌓아나갔고, 일독회 간부에게 연주회를 제안할 정도의 적극성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일본 지휘자 고노에 히데마로를 제치고 1943년 베를린 필을 지휘하기에 이른다.
당시 ‘에키타이 안’의 대표작은 <한국 환상곡> 이 아니라 일본의 8세기 궁중음악에서 멜로디를 차용한 <에텐라쿠(越天樂)> 였다. 프로그램이 알려진 6회의 독일 연주회에서 <에텐라쿠> 가 5회나 연주된 반면 <한국 환상곡> 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베를린 필이 연주한 것도 <에텐라쿠> 였다. 에텐라쿠> 한국> 에텐라쿠> 에텐라쿠(越天樂)> 한국>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한국 환상곡> 을 지휘했다는 안익태의 자필 기록과는 상반된다. 저자는 안익태의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며 “출세를 위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용한 안익태에게 이 시기는 잊혀지고 숨겨져야 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의 일제 협력 행위를 이렇게 해석한다. 한국>
“안익태를 정치적 신조가 굳은 애국자로 본다면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그러나 오로지 음악가로 성공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의 모순된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던 특정 시기의 일부 기록만으로 안익태를 판단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 기록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안익태는 식민지 시대에 <애국가> 를 작곡하고, 음악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린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일제 협력 행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국가>
이제 이 책이 추적한 시기 이전과 이후의 면모까지 종합적으로 안익태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연구 결과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친일과 애국의 이분법, 음악과 정치를 한 데 묶는 태도를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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