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진다’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된다. 정치가 주로 말로써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원들의 말이 신중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인 조성태 의원은 26일 갑작스럽게 의원직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의원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국방부장관 출신인 조 의원은 정부의 ‘급진적인’ 안보정책에 몇 차례 우려를 표시했다. 때문에 이날 사의 표명은 정부가 2012년 미국으로부터 전시 작전통제권을 돌려 받기로 한 데 대한 항의로 읽혔다. 소신이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 의원은 몇 시간 후 쌌던 짐을 다시 풀었다. “내가 사퇴하면 당에 군사ㆍ안보 전문가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만류도 한몫 했다.
조 의원의 거취 번복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4년 10월 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을 때에도 사퇴 의사를 피력했다. 그 때도 지도부의 만류가 있었고 조 의원은 입장을 나중에 정하겠다고 한발 뺐다.
의원의 처신이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몇 시간 만에 철회할 사퇴 의사를 뭣하러 밝혔는지, 그가 국방부장관까지 지낸 군 원로라고 믿기지 않는다. 그 정도로 사퇴 의사를 접을 것이었다면 아예 사퇴 문제를 입 밖에 내지 말았어야 했다. 조 의원이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두고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의원직은 즉흥적 기분에 따라 내던지고, 옆에서 말리면 다시 가져오는 하찮은 자리가 아니다. 유권자의 직접 투표를 거치지 않은 비례대표로, 쉽게 금배지를 달아서 그런가.
김지성 정치부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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