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년 연속 대규모 적자 기록으로 법정적립금마저 바닥을 보이자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적자를 줄이자니 부동산 가격 등 물가 불안,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타격이 불보듯 뻔하고, 방치하자니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외환보유고의 증가로 한은 재정의 악화는 물론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될 상황에 몰린 것이다.
한국은행이 26일 잠정 집계한 2006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은은 약 1조7,600억원의 적자를 내 2004년(1조5,000억원) 2005년(1조8,800억원)에 이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한때 5조9,000억원에 달했던 한은의 법정적립금은 현재 2조원 가량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올해도 약 1조2,000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어 적립금은 1~2년 내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은이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나면 그 부족분은 정부가 예산으로 메워준다. 그 때문에 중앙은행의 적자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한은이 3년 연속 적자는 한계점에 이른 우리나라 외환관리 정책의 결과라는 점에서 근본적 개선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은이 지난해 지출한 총 비용은 11조9,000억원으로, 이 중 76%가 통화안정증권 이자(6조8,000억원) 외화평형기금채권 이자(2조3,000억원)다. 통안증권과 외평채는 환율 방어를 위해 한은이 원화를 찍어 달러를 사들이면서 발행한다.
하지만 환율 방어와 그에 따른 통화량 증가 억제를 위해 발행한 채권의 규모가 너무 커지면서 한은이 지급하는 이자가 국내 통화량을 증가시켜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각종 투기자금의 공급원이 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통안증권 발행 규모를 줄이면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원화 가치가 급등, 수출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또 통안증권 회수가 늘어나면 바로 시중통화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한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팀장은 한은이 이 같은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환보유고 중 일부를 주식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늘려 적자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올해부터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선진국 주식에 투자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전략은 한은의 적자 규모를 감안할 때 보완책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총 158조원(2006년 말 기준)에 달하는 통안증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면돌파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통안증권 발행을 결정하는 현행 통화관리 체계가 한계점에 도달한 만큼, 통안증권을 국채로 전환하고 한은은 그 국채를 매입하거나 되파는 과정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미국식 통화정책 시스템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국채가 일시에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점 때문에 정부 반대가 분명해 보여 추진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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