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주요 금융기관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선발 과정은 한 마디로 파행적이고 구시대로의 회귀다. 공개 모집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전 내정에 의한 낙하산 인사라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우리은행장, 기업은행장과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를 청와대와 재정경제부가 사이 좋게 나눠 갖기로 했다는 기막힌 소문도 있다.
과거 관치금융 시대에 있을 법한 구태가 재현되는 이유는 CEO 공모제가 허울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공모제의 취지는 말 그대로 공개적이고 투명한 선발절차를 통해 최고의 적임자를 찾아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인사로 구성된 CEO 추천위원회가 객관적으로 후보를 선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 공모는 그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어 문제다.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과정이나 위원 명단, 심사 기준, 회의록 등 일체의 과정이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행장추천위원회의 근거 규정도 없고 현재 위원회가 활동 중인지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검증했는지 전혀 모르는 채 어느 날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인 인사가 어떻게 공개 모집이냐"는 노조의 반문은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임기 3년 동안 자산을 100조원 늘리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입증한 황영기 우리금융회장이 후보 3배수에도 끼지 못했지만 선발기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공모 과정을 공개할 경우 과열경쟁을 부추기고 위원회의 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대논리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개로 인해 초래되는 부작용보다 공개로 인한 사회적 공익이 더 크다면 공개해야 하는 법이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모과정을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개혁 지향이라는 말을 내세우려면,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기업과 금융기관장 선발절차부터 뜯어고쳐 명실상부한 공모제를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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