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의 오토바이 마니아들은 6,000만원을 넘나드는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광속 질주하는 게 꿈이지만,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은 가격과 성능에서 그보다 한 두 단계 아래인 일본제품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 등의 4개사 제품은 '오토바이 경제'로 불리는 동남아시장 점유율이 한 때 90%를 넘기도 했다.
이 중에서도 스즈키(SUZUKI)가 최근 일본의 기린아로 부상했다고 한다. 오토바이의 명성과 기술력 위에서 1978년 시작한 경차 사업의 실적이 도요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눈부시기 때문이다.
▦ 일본 자동차산업의 막내 주자로, 생산 첫 해 3,000억엔에 그쳤던 스즈키의 매출은 2006회계연도에 무려 3조엔을 넘고 경상이익이 1,500억원에 근접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한다. 1980년대 중반 일찌감치 일본 경차시장을 석권한 이후 연 평균 10%에 그쳤던 성장속도를 대폭 끌어올린 결과다.
해외시장에서의 활약도 괄목할 만하다. 합작법인인 '인도 마루티'는 인도 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먹어치웠고, 중국과 동유럽 등지에서의 생산대수도 도요타를 앞지르며 확대일로다. 도요타가 감탄과 함께 경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그 중심에는 창업자인 스즈키 오사무(鈴木修ㆍ77) 회장이 이끄는 '스즈키 경영'이 있다. 요체는 본인이 업무 출장으로 신칸센을 이용할 때도 가장 싼 '고다마' 자유석만 찾을 정도의 짠돌이 경영과, 연구개발을 위해서라면 연간 경상이익을 다 쏟아부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의 품질 우선주의다.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라'는 철학으로 인도시장을 선점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3년은 버텨야 한다'는 신조로 미래 예측과 대비를 강조한 일화도 늘 따라다닌다. 독자판매망 대신 정비공장과 중고차 매매업체를 판매네트워크로 활용하는 것도 유명하다.
▦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이 같은 스즈키 회장의 성공비결을 '희로애락 경영'으로 재치있게 표현했다고 한다. 일선 판매망이 기쁨을 느끼도록 우대하고, 임직원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꾸짖으며, 경쟁업체에 뒤지는 기술력 약세를 슬퍼하고, 실패와 난관을 성공의 씨앗으로 즐기는 경영이 그것이다.
거창한 것 같으나, 사실 글로벌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최고경영자가 이 정도의 자질을 갖지 못한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남의 떡이 커보여서 그런지, 우리 안으로 눈을 돌리면 기업가 정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편치 못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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