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에서 어렵사리 이뤄진 ‘2ㆍ13 합의’의 평가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에 타결된 내용이 1994년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시절 체결됐던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와 ‘다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 '2ㆍ13 합의'를 보는 시각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22일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행한 발언 속에도 이러한 양상에 대한 불만과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힐 차관보는 2ㆍ13 합의에 대한 본격적 설명에 앞서 “좌우 양쪽, 모두로부터 (이번 합의가) 제네바 기본합의의 재판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른쪽의 공화당 강경파는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해준 제네바 합의로 후퇴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왼쪽의 민주당 진영으로부터는 “결국 제네바 합의로의 복귀라는 해답밖에 내놓지 못할 거면서 그동안 허송세월했다”는 힐난이 무성하다.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힐 차관보를 비롯한 공화당 행정부 관리들은 ‘제네바 합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중국을 끌어들여 이번 합의의 산파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 다르고, 북한 핵시설의 동결을 넘어 불능화의 개념까지 만들어냈기 때문에 똑같이 취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가 주장하는 것들에는 나름대로 경청해야 할 부분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논쟁이 이곳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은 협상의 비판자인 보수 강경파나 민주당 세력, 그리고 협상의 담당자인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유령’에 발목이 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체결된 때로부터 13년째, 파탄에 이른 지는 5년째인 제네바 합의로부터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제네바 합의와 단순 비교하는 시각으로는 그동안 진행돼온 우여곡절을 제대로 분석해 내기가 어렵다. 북한이 왜 핵실험을 강행한 뒤 6자회담에 복귀했는지, 북한의 복귀에 강경책이 주효했는지, 아니면 유화책이 주효했는지 등을 가감없이 정리해내기 위해서는 선입견 없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네바합의와 단순비교해선 안돼
또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도 의식적으로 제네바 합의와 ‘달라야 한다’는 차별성에 집착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들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특히 앞으로 북한이 경수로 요구를 본격 제기, 제네바 합의와의 외형적 유사성이 한층 더 부각되는 상황이 됐을 때가 더 문제다. 그 국면에서 부시 행정부가 경직성을 보이면 6자회담은 또다시 미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결단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미국도 경수로에 대해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시 행정부는 미 언론으로부터 북핵 문제에서 ‘실용주의’로의 전환을 보였다는 점에서 모처럼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참에 부시 행정부는 더 솔직해져야 한다. 같은 점이 있다면 ‘같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북한 핵 폐기가 궁극적 목표임을 다시 새겨야 할 것이다.
고태성ㆍ워싱턴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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