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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정리벽… 수집벽… 조선후기 마니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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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정리벽… 수집벽… 조선후기 마니아 문화

입력
2007.02.2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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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448쪽ㆍ2만3,000원

서양의 계몽주의 학자들이 중세적 관념에서 탈피, 지식의 재배치에 몰두하던 18세기에 조선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지식인들은 주자학 일변도의 문화 자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지식 경영에 몰입했다. 격정과 열망, 호기심으로 세상을 다시 보았고 강한 자아 의식을 형성했다. 그래서 정민 교수는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시기를 18세기라고 말한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은 그 시기 지식인 사회의 관찰기이다.

당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벽(癖) 예찬론이다. 벽은 무언가에 미친다는 뜻. 이를테면 마니아다.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박제가의 지적처럼, 그 시절 지식인들은 미쳤다거나 바보 같다는 말을 명예로 받아들였다. 미치지도 않고 그럭저럭 욕 안 먹고 사는 것을 죽느니 만도 못하다고 여겼다. 편집광적 정리벽, 종류를 가리지 않는 수집벽, 사소한 사물에까지 미친 애호벽 등 다양한 벽에, 그들은 동지적 결속을 보였다.

지식인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도(道)를 추구하던 가치 지향이 진실의 추구로 바뀐다. 불변의 도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버리고, 눈앞의 진실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과거로부터 이상적 가치를 찾던 퇴행적 역사관은 눈앞의 세계를 중시하는 진보적 역사관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생각의 기준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이동했다. 정약용이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즐겨 조선의 시를 짓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박지원이 “내 시를 읽는 사람이 내 시에서 조선 사람만의 체취와 풍습을 볼 수 없다면 그런 시는 쓰나 마나 한 시”라고 말한 것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한위총서> <소대총서> 같은 중국 총서에 맞서 <삼한총서> (박지원)와 <해내총서> <해외총서> (이상 유만주)를 기획한 것은 너희가 있는데 우리라고 없겠느냐는 오기의 발로였다.

금기시되던 골동서화 수집과 원예 같은 것들이 문인의 취미로 수용된 것도 이때다. 당시 지식인 층은 생활 속의 예술을 추구했다. 서책 골동 서화에 관심을 보이고, 정원을 꾸며 진기한 화훼와 수목을 심는 원예도 탐닉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정보화와 세계화가 자리잡고 있다. 북벌을 국시로 삼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막상 무찔러야 할 대상인 청나라 북경에서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방으로 뻗은 넓은 도로에 으리으리한 건축물, 거리를 가득 메운 서점과 산더미처럼 쌓인 서책, 고딕식 서양 성당과 서구에서 들어온 과학 기술…. 청나라는 애초에 조선이 무찌를 상대가 아니었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안 조선의 지식인들은 북벌에서 북학으로 방향을 틀고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한다. 엄청난 양의 서책과 소비재가 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에는 외국 문물에 대한 동경과 우리 것에 대한 자기 혐오가 섞여 있었지만, 강고한 북벌 이데올로기에 갇힌 폐쇄적 사회는 당시 지식인들을 더 이상 묶어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식, 글쓰기, 자의식, 감각, 취미 등 의식 전반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선회의 계기였고 서양의 르네상스 못지않은 지적 변화였다. 그러나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 변화를 주도한 지식인은 여전히 소수였다. 새로운 기운이 감돌수록 보수적 지배층은 기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욱 똘똘 뭉쳤다. 그것이 18세기의 한계였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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