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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현대정신의학잔혹사 '100년 전 名醫, 생니 뽑아 정신병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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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현대정신의학잔혹사 '100년 전 名醫, 생니 뽑아 정신병 치료?'

입력
2007.02.2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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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스컬 지음ㆍ전대호 옮김 / 모티브북 발행ㆍ544쪽ㆍ2만1,000원

치아를 뽑으면 정신 질환을 고칠 수 있다?

어린 아이도 코웃음을 칠 말이지만 100년 전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이 말이 과학적 진실이었다. 한 정신과 의사의 잘못된 믿음은 수천명의 치아를 뽑고, 편도를 잘랐으며, 배를 갈랐다.

20세기 초 현미경의 도입으로 세균이 발견되고, 세균이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정신 질환 역시 세균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뉴저지주 트렙턴 주립병원 원장 헨리 코튼은 이를 신봉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의사였다. 그는 정신 질환자의 몸 속에 숨어 있는 감염 부위를 찾아낸 뒤, 국소 감염의 원인이 된 패혈증을 제거하면 정신 질환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처음으로 칼을 들이댄 곳은 치아였다. 1919년에서 1920년까지 4,201장의 X선 사진을 찍어 4,392개의 치아를 뽑았다. 다음 해 그에 의해 뽑힌 치아 수는 6,472개로 늘어났다. 이는 입원 환자 1명당 10개에 해당하는 개수였다. 그의 칼은 치아에 머물지 않고 편도, 난관, 정소, 췌장, 창자 등으로 이어졌다.

환자들의 인권이나 40%에 이르는 사망률은 새롭고 혁신적인 치료법이라는 빛나는 이름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코튼이 제시한 회복률 85%라는 수치에 학계와 주정부는 열렬한 찬사를 보냈고, 후원금이 쏟아졌으며, 환자들은 줄을 이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여의사 필리스 그린에이커는 코튼이 발표한 수치가 조작됐으며 그의 치료법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침묵을 지키라는 스승의 지시를 따르고 말았다.

논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스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튼이 사망하자 신문들은 ‘세계적 정신과 의사 사망’, ‘정신 질환으로 고통 당한 수천명의 사람들을 희망으로 이끈 위대한 선구자’ 라고 썼고, 트렙턴 주립병원은 20세기 중반까지 같은 방식의 치료법을 사용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사화학ㆍ과학학 교수가 병원 기록과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쓴 이 책은 미국에서 일어난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과학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오래 전 외국에서 있었던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과학 연구에 있어서 검증 받지 못한 맹신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최근 한국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우지 않았던가.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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