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실버스타인 지음·정인환 옮김 / 이후 발행·328쪽·1만4,800원
옛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는 종언을 고했건만 세계는 평화 대신 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쟁의 주도자는 단연 미국이다. 9·11테러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따라 침공했고, 최근엔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해 독재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인 6,246억 달러를 올해 국방예산으로 책정, 러시아 중국 등과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브라질 태생의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반동적 상황의 막후에서 ‘민간전쟁광’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냉전 시대에 축적한 부와 인맥을 동원해 무기 암거래상, 용병 공급업체 임원, 군수산업 로비스트 등으로 맹활약 중이다.
저자는 이런 암흑의 거상(巨商)들과 그 주변 인물을 장기간 끈질기게 취재했다. 인터뷰에만 3년이 걸렸다는 노작에는 미국 정부와 민간 군수업자들의 검은 공생관계와 부적절한 행각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나치당원에서 ‘미국의 자산’으로 변신한 무기거래상 에른스트 베르너 글라트는 이란-콘트라 사건을 비롯한 미국의 제3세계 개입 정책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특히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글라트는 동구권 국가에서 소련제 무기를 빼내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게릴라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용병 공급업체들은 이제 버젓이 구인광고까지 내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다인코프’란 회사는 미 정부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인 마약 단속 작전을 수행 하고 있고, ‘베택’은 미 특전사령부와 긴밀히 연계돼 국제 첩보 활동을 벌인다. 이런 민영화는 미국 입장에서도 정치적·군사적 책임을 피할 수 있으니 반길 일이다.
한 미국 시민단체의 작년 통계에 따르면 이라크엔 60개 민간 군수업체에서 2만5,000명이 파견돼 활동 중이라고 한다. 냉전 종식을 무색케 하는 강력한 군산복합 체제가 전쟁 개입을 넘어 전쟁을 만들어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고귀한 목숨을 담보로 벌어지는 전쟁의 이면에 추악한 셈속이 숨어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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