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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진보진영의 정부 비판,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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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진보진영의 정부 비판,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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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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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실패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청와대와 진보진영 간 기류가 험악하다. 최장집 교수 등 진보 학자들의 신랄한 정부 비판이 이어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맞대응에 나섰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최 교수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념 논쟁에 가깝지만 대선과 연계돼 파장이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기숙 교수와 대표적 진보학자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만나 ‘참여정부 실패론’을 중심으로 대담을 나눴다.

조희연 교수=진보 지식인 내부에 약간의 시각차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참여정부 5년이 위기로 귀결되고 있고, 이것은 현 정부에서 활약한 주체들의 중요한 실책에서 비롯한다는 의견이 많다.

조기숙 교수=최장집 교수를 비롯한 진보학자들의 위기론에는 무엇을 위기로 볼 것인가에 대한 엄밀한 정의가 빠져 있다. 참여정부의 지지도가 저조하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낮은 신뢰도에 허덕이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을 보면 레이건과 클린턴 정부가 근래 들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역대 정부 중에서는 최하위권이다. 양극화 지수도 경제 발전에 따라 커지는 경향이 강하다. 학자로서 위기를 말하려면 그에 합당한 이론 및 분석틀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조희연 교수=참여정부가 국민에게 이토록 광범위한 불신을 받는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위기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위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돼 있다. 일부 신문을 위시한 보수 세력의 저항도 있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거시적 차원의 제약도 존재한다. 하지만 통치 세력이 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는 항상 장애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 때문에 정책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건 통치세력 스스로 할 말이 아니라고 본다.

조기숙 교수=우리 사회에는 분단 이후 보수적 구조와 이념이 강하게 형성됐다. 정부 입장에선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 국민의 이념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두고 진보진영은 참여정부가 좌파적 정책 목표를 실행하지 못했다고 비판만 한다. 보수 언론은 이것을 대서특필하며 이용한다. 최장집 교수는 정부가 보수세력을 탓하며 ‘실패의 알리바이’를 찾는다고 했는데 최 교수야말로 진보학자로서 책임을 못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되묻고 싶다.

조희연 교수=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보수적 저항과 진보적 저항이 상존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의 비판마저 통치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보수적 저항이 개혁의 진전을 방해하는 퇴행적인 것이라면, 진보적 저항은 현실적 제약을 넘어 더 높은 수준으로 나갈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한미FTA 반대 투쟁으로 정부는 대미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보수 언론의 정부 비판에도 긍정적 기능이 있다. 그들이 양극화 심화를 지적하며 정부를 공격하는 동안 국민의 사회적 평등에 대한 기대는 한층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기숙 교수=청와대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양극화 해소는 대선 공약이 아니었다. ‘서민 대통령’이니 만큼 서민을 잘 살도록 애쓰겠다고는 했지만. 공약의 핵심은 낡은 정치를 청산한 새 정치의 창출이었는데 그것은 누가 평가해도 성공했다고 할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려면 이런 공과를 두루 살펴야 할 텐데 진보학자들은 싸잡아 ‘총제적 실패’라고 말한다. 건설적이지 않은, 감정적이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이다.

조희연 교수=‘성공의 위기’라는 것이 있다. 통치세력이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 대중은 그것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 앞으로 나갈 것을 요구한다. 박정희 정권도 개발과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았고, 그렇게 일어난 반독재세력도 민주주의, 투명성 등이 실현되자 위기에 봉착했다. 참여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국민은 정부 초기에 직면하지 않았던 문제에 불만을 터뜨리며 그것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기숙 교수=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모두 선거공약을 달성한 순간 지지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한 순간, 2004년 총선에서 새 정치를 이룬 그 순간 국민에겐 절실했던 기대가 해소되고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참여정부가 대중의 기대 수준을 높인 부분이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정 문제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 무섭게 언론은 세금 인상이라고 반발했다. 그때 정작 도와줘야 할 진보학자들은 죄다 입을 다물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조희연 교수=노무현 정부의 위기가 왜 한나라당 지지로 이어지고 있을까. 보수 언론이 조장한 교육 효과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적 실책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실망이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참여정부를 둘러싼 여러 제약 조건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고 통치 주체에게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기숙 교수=참여정부를 마치 권위주의 정권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날 권력의 주체세력이 누구이고 주체세력이 아닌 사람은 또 누구인가. 노 대통령을 찍은 사람은 모두 주체세력이고, 이들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중이 한나라당 지지로 옮겨간 것을 두고 보수 언론을 탓하는데, 책임 있는 좌파 교수라면 그들을 진보정당 지지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희연 교수=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진영의 한계를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정당 지지도 변화에 참여정부로 상징되는 중도자유주의 정부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기숙 교수=글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난국을 초래한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에 권력을 내줬지만 2년 후 총선에서 과반으로 제1당을 차지했다. 기득권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현재 한나라당으로 지지가 쏠리는 것도 참여정부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그런 관성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손호철 교수는 한나라당이 집권해 대중이 고통을 더 겪어야 의식화될 거라고 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그런 기대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참여정부와 한나라당이 뭐가 다르냐’는 좌파 지식인들의 냉소주의, 패배주의가 참여정부를 더욱 고전하게 만든다.

조희연 교수=손 교수 주장은 참여정부의 위기로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현실을 돌파할 대안을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의제를 해결 못하고 정치적 수준에 머물러 결국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됐다는 최장집 교수의 발언도 학자로서 정당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참여정부 탓인가를 따지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진보세력-넓은 의미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이런 위기상황에 대응할 대안적 프로젝트를 내놓고 대중의 지지를 재획득하려는 노력이다.

조기숙 교수=참여정부 지지도가 낮은 이유는 대선 지지층 중 두 부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민노당에 가까운 진보적 지지자들로, 이들은 FTA·새만금 정책에서 정부에 등을 돌렸다. 다른 쪽은 경제적으론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신중산층이다. 참여정부가 보수 언론에 의해 비주류 스타일 및 아마추어 정부로 채색되면서 이들이 보기에 촌스럽고 경제적으로 못미더워졌다.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두 지지층을 되찾으려면 반드시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좌파와 일정 정도 공동보조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당이 중도 대통합 신당을 운운하는 건 스스로 우파 보수와 좌파 진보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조희연 교수=대연정이야말로 참여정부가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을 협소화하는 결정적 실책이었다고 본다. 한나라당과 차별성을 부각해야 할 노무현 정부가 오히려 그들과 같은 부류임을 자인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대단히 양극화된 신계급주의 사회로 이행 중이다. 종종 “강남 사람은 계급의식이 투철한데 강북 사람은 그런 의식이 없다”는 말을 한다. 상층계급이 먼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알아챈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계급적 분화에 상응하는 정치적 의식을 갖출 때 진보정치도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정리=이훈성기자 hs0213@hk.co.kr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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