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축제다. 억지로 설명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스스로 타오르는 축제다. 22일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이틀째 진행된 '청소년을 위한 제14회 자연과학 공개강연'(한국일보사·서울대 자연대·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 공동주최, 삼성전자 협찬)은 번뜩이는 질문과 색다른 답변으로 차고 넘쳤다. 청소년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한 취지로 매년 서울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마지막날인 22일에도 2,000여명의 초ㆍ중ㆍ고생과 학부모들이 찾았다.
오전 10시 시작된 첫 강연은 에이즈 신약'퓨지온'의 개발 주역인 강명철(바이오인프라 최고경영자) 박사가 맡았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여기요!"라며 고사리손이 번쩍 들렸다. 서울 신정1동 신서초등학교 5학년 이동현군은 "이 약이 기존 약들에 대한 내성(耐性)을 극복했지만 이 약도 다시 내성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요? 에이즈 바이러스 자체의 DNA나 RNA를 변형해서 독성을 없앨 수는 없나요?"라고 또랑또랑 질문을 했다.
강 박사는 "당장 고3으로 올라가라"며 혀를 내두른 뒤 "내성에 대비한 다른 약을 준비중이며, RNA 변형으로 에이즈를 극복할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고 답했다.
홍성욱(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 교수가 강연 중 돌발 퀴즈로 출제한 문제에 대한 답변도 걸작이었다. 그는 아이작 뉴턴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어 '과학적 창의성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강의 도중 홍 교수는 스패너, 펜치, 바나나 등을 늘어놓고 "이 중 다른 것 하나를 골라내고 그 기준을 지적하라"는 문제를 냈다. 당연한 답변인 '바나나와 그 밖의 금속 도구들'이라는 분류 대신 학생들은 "2개의 요소를 결합해 만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지렛대 원리로 벌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강연에는 창의성과 관련, 학부모들이 기억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강 박사는 창의적 학생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들려주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도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인에, 고교 성적이 1등이고, 수학능력시험(SAT) 만점을 받은데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중 하나를 연주하는 학생은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입학시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떨어뜨립니다. 왜냐구요? 바로 어머니가 만든 아이라는 겁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홍 교수 역시 "창의적인 사람은 간혹 주어진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남들이 못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겨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일하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는 사람"이라며 "꼭 영감 어린 천재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희준(서울대 생명화학부) 교수가 1시간동안 벌인 과학퀴즈는 시종 열기가 뜨거워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20명 이상 단체로 참여한 중·고생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골든벨 방식의 문제풀이에 나섰다.
첫번째 문제는 "DNA를 구성하는 염기쌍들이 0.3마이크론(100만분의1m)의 간격으로 배열돼 있고, 한 개의 세포에 들어있는 염색체 염기쌍을 모두 합치면 60억개가 되고, 사람의 몸은 총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한 사람의 몸 속에 든 DNA를 모두 연결하면 그 길이는 얼마나 될까"였다.
정답은 서울대부터 태양계 끝까지였다. 답을 맞추고 무대에 남은 학생 중 일부는 2006년 8월 국제천문학회에서 새롭게 정의한 행성의 조건까지 내리 맞혀 과학도서를 상품으로 챙겼다.
학부모들도 실력을 맘껏 발휘했다. 천연기념물 204호인 팔색조,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원자의 갯수(10의14제곱개)를 맞힌 주인공들은 모두 자녀와 함께 온 어머니들이었다.
학생들의 번뜩이는 재치에 강연자들이 놀라기도 했다. 김 교수는 "너 정답 정말 알아? 초등학생이잖아…. 보어 궤도라고? 어 정말 아네. 야, 초등학생이 보어를 아네요. 이거는 대상감인데"라고 말했다. 홍 교수도 "당연히 바나나라고 답할 줄 알았죠. 그래야 내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준비한 질문인데, 덜컥 다른 답이 나와서 내가 오히려 놀랐잖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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