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아직 봄이 왔다고 하기엔 겨울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살짝 남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맞이에 벌써 마음이 설레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항상 이맘 때면 모든 잡지사가 이른 봄을 맞이하는 3월호 준비를 끝내고, 벌써 4월을 향해 달려갈 때이다. 나 역시 항상 한 달 주기로 마감을 하면서 새롭게 4월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있을 무렵이기도 하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역시 봄나물을 이용한 나물 무침에서부터 새로운 요리까지 2월의 주인공은 봄나물이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조금 발 빠른 잡지에서는 1월에 2월호 준비를 하면서 봄나물을 많이 찍기도 하지만.
3년 전 요맘때였을 것이다. 한 주간잡지의 팀장이 전화를 했다. “상영씨~ . 우리 여행갈까?” 그녀가 여행을 가자는 것은 어디 멀~리 나가서 촬영이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는 예고와 같은 것이다. 주간잡지의 특성상 요리 페이지가 많지는 않으나, 간혹 이렇게 야외로 나가 만들어 먹는 요리법에 관한 기사거리가 생기면 어김없이 나에게 전화를 주시는 감사한 그녀였다.
몇 번의 야외촬영을 통해 난 그녀의 예리하고 카리스마 있는 생김새와 달리, 털털한 성격에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 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보고선 ‘참 멋진 여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르는 말을 듣고 난 지체 없이 “가겠노라”고 했다.
촬영 당일 아침 우리는 강원도 펜션으로 댓바람에 달려 갔다. 오랜만에 이렇게 멀리 촬영을 나왔으니 바람이라도 쐬겠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준비에 들어갔다.
오만가지 짐을 다 싸서 차에 가득 실었으니 이제 그 오만가지 짐을 푸는 일부터 해야 했다. 짐을 풀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람찬 하루 일을 마감하고 다시 짐을 싸서 올라간다면, 이게 무슨 여행 차 내려온 촬영이겠는가.
본격적인 우리들만에 여행 파티는 이제부터다. 촬영차 들고 온 온갖 재료와 함께 노다씨의 즉석요리에서부터 야외 별미인 삼겹살 통구이까지 촬영팀들을 위한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날 노다씨의 아이디어 요리는 적당한 크기의 멸치를 쪽파와 함께 양념한 비빔밥. 야외에서 고기를 굽다 보면 야채와 깻잎 외에 다른 반찬들을 주루룩 놓고 먹기 불편한데 이를 배려한 베스트 아이디어 요리였다. 여기에 상추며 깻잎, 고추, 그리고 불에 올릴 감자 고구마까지 준비해와 맛있는 저녁을 거의 다 완성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팀장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숟가락 하나 더 준비해 달라는 부탁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촬영팀 부장님께서 오신다는 것.
고기가 벌써 다 익어가고 있어 많이 늦으시면 안 된다는 내 이야기에 팀장님은 그 분께 연신 전화를 하며 빨리 오시라고 재촉하셨다. 먼저 먹고 있으라는 말에 죄송하지만 살짝 멸치 비빔밤을 먹으며 고기 조금에 술 한 잔씩 기울이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뒤늦게 오신 부장님을 위해 또다시 노다씨의 즉석요리가 들어갈려는 찰나, 부장님이 오는 길에 마늘대라는 것을 사오셨다며 고기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고 노다씨에게 건네주었다.
길쭉한 것이 눌러 놓은 파같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외국에 나갔을 때 본 파(leek)가 꼭 이렇게 생겼었다. 역시, 노다씨는 눈을 반짝거리며 “이것으로 뭔가 요리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부장님께서 만류하시면서 이건 요리를 해서 먹는 것 보다 그냥 고기와 함께 쌈장에 찍어먹는 것이 제 맛이라 하셨다.
사실 나도 마늘대를 처음 봤고, 말은 안 해도 노다씨 역시 처음 접하는 기색이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30년 전 맥주집에서 야채 모둠안주를 시키면 빠지지 않는 품목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유경험자의 말을 존중해 마늘대를 테이블 옆쪽으로 놓고 다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선뜻 새로운 재료에 손이 가지 않다가 다들 맛있다고 말하는 터에 그냥 한 개만 먹어보리라는 마음으로 입으로 가져갔다.
‘오호라, 이런 맛이었군.’ 마치 원추리를 씹는 듯한 질감인데 입안에서 퍼지는 은은한 마늘향. 씹으면 씹을수록 짙게 발하는 이 향은 강하지 않으면서 깊게 남아있는 것이 중독성이 있었다. 생마늘을 먹을 때 입에서 자극적으로 퍼지는 알싸한 맛과 향보다 순하디 순하면서 마지막에 남겨지는 깊은 여운은 자꾸자꾸 손이 가게 만들었다.
푸하! 이렇게 맛난 것을 이제야 먹어보다니. 사실 요리 전문가라고 해서 모든 재료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보다 더 요리를 자주 하고 자주 접하면서 남들보다 다룰 수 있는 재료들이 늘어간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이렇게 새롭게 접한 재료를 또 하나 알아가고 새로운 맛을 알아간다는 것은 이 직업의 묘한 매력이다.
노다씨와 나는 며칠 뒤 마늘대를 사가지고 와서 우리 부부를 위한 삼겹살 파티를 준비했다. 주 재료는 삼겹살과 마늘대, 그리고 마늘. 사실 마늘대를 사러 가보니 ‘풋마늘’이라 많이 쓰여 있었다.
풋마늘이면 어떻고 마늘대면 어떠랴.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가 보다. 한 아름 사온 마늘대를 구워도 보고 겉절이처럼 양념도 해 보았지만, 원재료의 맛을 반감시키기만 했다.
결국, 노다씨와 내가 낸 아이디어는 삼겹살을 쌈장 양념에 재운 뒤 구워서 접시에 올리고, 서양식으로 한쪽에 마늘대를 푸짐히 올려 구운마늘을 뿌려내자는 것. 거기에 더하여 그 날 먹었던 멸치 비빔밥을 같이 한다면 손쉬우면서도 산뜻한 상차림이 될 것 같았다. 역시 대성공.
새로움은 또 다른 새로움을 동반하는 것 같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또 새로운 우리 부부만에 요리가 탄생했다. 봄나물이라 함은 겨울 내내 케케묵었던 우리 입맛을 돋구어주는 요리임에는 틀림없다. 더불어, 늘 하던 조리 방식대로가 아니라 약간의 생각 전환은 기분까지 상쾌하게 하는 것 같다.
봄의 여러 어원 중 ‘새롭게 깨어난 세상의 활기찬 움직임을 본다’라는 것이 있다. 봄을 맞이하며 새롭게 태어난 우리 부부의 요리가 자칫 춘곤증과 식곤증으로 이어지는 이 때, 입 안에 활기찬 기운을 불어 넣어 여러분의 몸 구석구석까지 보내주길 바란다.
# 멸치쪽파비빔밥
재료:멸치150g, 쪽파100g, 검은깨 1작은술, 치커리50g, 현미밥1공기(210g)
멸치 양념:고추장 1큰술, 물엿 3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다진 대파 1큰술, 설탕 1큰술
* 밑재료 준비하기
쪽파는 먹기 좋게 4cm 길이로 잘라 놓고, 치커리는 깨끗이 씻어 2x2cm 로 사각썰기 해놓는다.
* 멸치 양념하기
멸치는 내장을 제거해 놓는다.
볼에 양념을 넣고 잘 섞은 후 멸치와 쪽파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 비빔밥 완성하기
그릇에 밥을 소담히 올린 후 치커리를 올리고 그 위에 멸치 양념을 소복하게 쌓아준다.
# 마늘대 곁들인 삼겹살구이
재료:냉장삼겹살 1근(600g), 깐마늘 6~8개, 마늘대(풋마늘) 2~3줄기
돼지고기 양념 소스:쌈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대파 2큰술, 깨소금 1작은술, 설탕 1큰술, 정종 1큰술, 맛술 2큰술
* 돼지고기 양념해 재우기
볼에 양념 소스 재료를 넣고 잘 섞은 후 삼겹살을 넣고 상온에서 약 15분간 재워 숙성시킨다.
* 구운 마늘 만들기
깐마늘은 얇게 저민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내다.
* 마늘대 손질하기
마늘대는 깨끗이 정리해 물에 충분히 씻은 후 5cm 길이로 잘라 준비한다.
* 고기 구워 접시에 담기
숙성 시킨 삼겹살을 팬에 올리고 저온에서 구워낸다.
구워낸 삼겹살을 그릇에 올리고 고기 옆으로 마늘대를 풍성히 올린 후 구운 마늘을 뿌려낸다.
김상영 푸드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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