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이상 밤을 낮 삼아 생활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입힐 때가 종종 있다. 신문 배달하는 청년에게 특히 그렇다. 우리집에 신문이 오는 시간은 정확히 새벽 4시 20분이다. 얼마 전, 그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 문 앞까지 나가 신문 배달 청년을 기다렸는데(내 딴엔 신문배달 청년을 도와준다고), 그게 풍경이 좀 그랬나 보다.
어두컴컴한 복도 한복판에, 까치 머리를 한 채, 거의 차렷자세로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신문 배달 청년은 헉하며 반 발짝 정도 뒷걸음질을 쳤다. 안녕하세요? 정겹게 인사를 건네도, 청년은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쏜살같이 다음 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청년의 다급한 발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못내 서운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사람이 인사성이 없구먼.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다시 현관에 들어서다가, 나도 좀전 신문 배달 청년처럼 헉하며 반 발짝 정도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신발장 가운데 있는 거울에, 한 낯선 남자가, 생긴 것도 이상하고 무서운 남자가, 제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밤이 되면 낮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자기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렇다(우린 자주 자기 자신을 오해하면서 살아간다). 신문 배달하는 청년에게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할 뿐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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