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로비스트法 뜨거운 감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로비스트法 뜨거운 감자

입력
2007.02.22 23:38
0 0

정치권에 발이 넓은 나청탁(가명)씨가 경품용 상품권제도 도입에 힘을 써주겠다며 오락기 업체들이 모은 돈 1억원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업계로선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어 일일이 의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나씨 같은 통로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씨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변호사와 법인 및 단체소속 임ㆍ직원에게만 로비활동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정권마다 터졌던 군납 비리와 각종 게이트, 최근의 바다이야기 사건까지 불법 로비와 관련된 사건이 끊이지 않자 로비스트를 양성화하자는 주장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민주당 이승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이 로비스트법을 발의했고,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2년 전 로비스트 양성화와는 취지가 조금 다르지만 외국 국가나 기업을 대리하는 ‘외국대리인’을 등록시키는 법안을 제출했다.

여기에 법무부가 22일 새해 업무계획에서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4월 로비스트 법안(가칭 ‘청원대리인에 관한 법률’)을 내놓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로비스트 양성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논란의 핵심은 과연 나씨 같은 로비스트를 합법화하는 것이 부패 근절에 도움이 되는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는 게 아닌지 하는 것이다.

법무부안과 의원 입법안의 골자는 국가에 로비스트로 등록한 사람이나 단체에겐 정부 정책결정 과정이나 집행ㆍ입법 과정에서 공무원 대상의 로비활동을 공개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미 입법ㆍ행정 등 각 영역에서 만연하고 있는 로비 행위를 양지로 끌어 올려 제도권으로 흡수하면 부패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 풍토가 강한 우리 실정에서 로비스트제도의 장점이 그대로 살려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 로비스트제가 도입되면 정책대결이나 이익의 균형보다는 자본의 논리로 정책이 결정될 위험이 있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에서 자금력이 있는 특정집단의 이익만 관철될 수 있다”며 “국민여론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는 공공의 영역을 사적인 로비스트에게 맡기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우려했다. 미국에선 로비스트 업계가 상원, 하원에 이어 ‘제3원(院)’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로비집단이 입법부의 일부가 됐다”는 비판도 뜨겁다.

현재 이은영 의원의 법안은 로비스트가 1회 5만원, 합계 20만원을 넘는 금품ㆍ향응을 제공할 수 없도록 했고, 이승희 의원안은 10만원을 초과하는 내용에 대해선 반드시 보고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물론 로비스트가 이 같은 법적 한도를 제대로 지킬지는 미지수다. 실제 이들 법안을 봐도 6개월에 한 번씩 수임내역 등을 담은 로비활동 보고서를 제출 받는 것 외에는 뾰족한 검증 방법이 없다. 로비스트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음성적 거래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 셈이다.

큰 틀에서 로비스트제 도입 방침을 정한 법무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이날 연고관계를 이용한 로비활동이나 전관예우 방지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로비스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기 때문에 로비스트의 자격을 제한하는 등 신중하게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