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대형서점내 액세서리 매장에서 귀고리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은색 체인에 매달려 반짝이는 감청색 구슬(?)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매장 직원이 사뭇 자랑스럽게 말을 꺼낸다.
“예쁘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거든요.”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은데다, 브랜드 명이나 알아볼까 싶어서 매대에서 눈을 떼고 둘러보니 업체 명은 온 데 간 데 없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귀고리 다량 입하’라는 광고 문구만 커다랗게 매달려 있다.
문득 에어컨 표면을 온통 크리스털로 뒤덮었다는 LG전자 휘센 제품의 CF가 뇌리를 스친다. 그러니까 스와로브스키라는 이름은 흥행 보증수표란 말이지!
크리스털의 전성시대
반짝이는 것이 ‘고급’ 혹은 ‘감각’과 통하는 시대다. 미니멀 퓨처리즘 유행을 타고 패션에서도 은색이나 금색 등 금속성의 광택 있는 소재가 유행하고, 가전제품도 크리스털로 장식해 반짝거리는 것들이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시장에 나온다.
부엌 수납장에 크리스털 로고가 부착되고 에어컨 전면에 수만 개의 크리스털로 수놓은 꽃문양이 화려하게 반짝인다. 휴대폰 자판이 크리스털로 장식되는가 하면 청바지 엉덩이에서 크리스털 하트가 유혹하고, 평범한 스니커즈가 크리스털로 튜닝되기도 한다. 그 크리스털의 이름은 모두 같다.
스와로브스키다. 올해로 창립 112년 됐다는 이 오스트리아 태생 크리스털 브랜드가 최근 패션 액세서리부터 가전, 최첨단 IT제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고급스러움과 희소성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로 대접받고 있다. 도대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뭐길래.
스와로브스키코리아(대표 황선) 커뮤니케이션부문 정상희 차장은 “국내서는 스와로브스키를 패션 액세서리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스와로브스키코리아의 주 매출은 크리스털 스톤에서 나온다”며 “최근 인터넷 IT미디어 ‘GD넷’이 IT산업의 크리스털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진다고 갈파했듯, 크리스털의 독특한 반짝임과 고급스러움, 보석 대비 저렴한 가격이 산업디자이너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주된 원료로 떠오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스와로브스키코리아의 매출은 스톤이 500억 원, 주얼리가 300억 원대다.
다이아몬드를 닮은 유리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스톤은 보석의 원석과는 다른 개념이다. 천연 수정(水晶)이 아닌 유리제품이기 때문이다. 패션 주얼리로 가공하지 않은 상태를 지칭한다고 보면 무방하다. 천연 보석이 아닌데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보석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것은 특급비밀인 커팅기법을 통해 획득한, 다이아몬드에 비견되는 투명도와 특유의 광택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58면의 커팅면을 통해 아름다운 광채를 뿜어내는 반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28면의 커팅면을 가진다. 다이아몬드의 강도가 10, 천연 크리스털은 7, 스와로브스키 제품은 5.2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고도의 커팅기술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컷 크리스털을 생산하는 타 업체들은 평균 12면 정도를 구현한다. 덕분에 스와로브스키는 전세계 컷 크리스털 스톤과 주얼리 시장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2005년 총매출만 해도 21억 4,000만 유로(약 2조6,000억 원)에 달한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의 제조비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1895년 창업자인 다니엘 스와로브스키에 의해 설립된 뒤 5대째 가업으로 이어져왔지만 원료가 모래와 소다, 산화납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는 패밀리 외에는 전수되지 않는다.
높아진 문화수준, 크리스털로 빛을 뿜다
지난달 크리스털로 화려한 꽃문양을 수놓은 에어컨을 출시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신상영 상무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특유의 반짝임과 럭셔리한 이미지가 프리미엄급 제품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며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기대 대로 이 제품은 전체 매출의 20%이상을 이끌고 있다. 반짝임과 고급스러움이 동급이 된 배경은 뭘까.
벌써 20년째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스톤을 사용하고 있다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권형민씨는 “먹고 살만해진 시대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전에는 드레스를 맞출 때 예식장의 조명 상태를 묻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10이면 8명은 예식장 불빛 아래서 원단이며 각종 장식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를 꼭 물어요. 그만큼 조명에 민감해진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성숙해진 것이죠. 자연히 조명 아래 빛을 잘 반사하는 고급 크리스털의 수요가 느는 것 아닐까요.”
백조 로고…그러나 안목이 우선
스와로브스키가 인조 수정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활용되고 있지만 워낙 유명하다 보니 가짜도 많다. 정상희 차장은 “와인을 사면 공짜로 준다는 식의 경품행사에 많이 등장하지만 스와로브스객?일체의 무료 경품 제공을 하지않는다”면서 “본사에서 매년 실태조사에 나서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정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법은 현재로서는 두 가지가 있다. 정품 주얼리는 제품 어딘가에는 반드시 스와로브스키의 백조 로고가 새겨져 있다. 유리잔 밑이든 목걸이 마감 장식이든 철저히 찾아 볼 것. 스톤을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는 대형업체는 정품을 증명하는 꼬리표를 부착한다. 청바지에 스톤을 붙였다면 상품설명서에 꼬리표가 첨가되는 방식.
그러나 소규모 공방에서 제작하는 주얼리나 휴대폰 액세서리 등은 사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감각’을 자랑하려면 ‘(크리스털을 보는) 안목’부터 길러야 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