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7일자에 실린 ‘위기에 부딪힌 진보 진영의 외연 넓히기’라는 기사를 보았다. 얼마 전부터 정계에서 중도론이 성행하고 있는데, 좀 우스워 보인다. 중도 노선이란 어떤 것과 다른 어떤 것의 중간을 꾀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통 진보와 보수의 중간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제도정치권의 진보세력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정계에서 말하는 중도란 극보수와 중도보수 사이의 중도이다. 이런 중도가 세상에 또 있는지 궁금하다.
● 진보 위기는 이념 아닌 행태 때문
학계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고, 담론계에서도 요즘 중도론이 한창인 모양이다. 이 중도론이 보수세력에서 나오지 않고 진보세력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의 진보가 쇠퇴하기는 했나보다. 진보노선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현 정부가 죽을 쑤고 있으니, 진보세력들이 살아남고 싶어 변화를 시도하는 모양이다.
최장집 교수는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민주주의는 퇴보하지 않을 것이니 한나라당의 집권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단다. 이런 당연한 말이 왜 얘깃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수용 안 하면 어쩔 것인가? 민주주의 절차를 제대로 지키는 한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민주주의는 훼손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경제 정책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에 따라 민주주의의, 절차가 아니라 그 토대 또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진보 학자라면 민주주의 절차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양극화 등 사회경제 상황에 더 관심을 가질 일이다.
손호철 교수는 “대선 구도를 진보ㆍ보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 여부를 중심으로 갈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범여권이 계속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범여권은 이미 진보세력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진보가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칭 유연한 진보라고 했지만, 이는 보수화의 그럴듯한 다른 말일 뿐이다.
임혁백 교수 등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서구나 남미와 같은 좌우 대칭을 꿈꿀 수 없는 우리 상황인지라 오른쪽으로 치우친 제3의 길을 모색한다.
사정상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노선이 그나마 중도의 제 이름에 값할 수 있는 노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백낙청, 황석영, 홍윤기 등 진보 인사들의 보수화가 실제인지 언론의 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이들이 더 힘 센 쪽에 붙고 싶어서 생각을 바꾸었다면 그것은 정말 문제다.
어쨌든 진보세력은 자신이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자신의 진보 노선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 노선을 기대한 지지층을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진보세력이 필자를 비롯한 다수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은 그들의 이념적 급진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동양식이다. 무례하고 독선적이고 미숙하고 전투적인 행동 양식이다.
● 성숙한 진보세력이 더 절실하다
이념의 급진성과 행동의 미숙성 또는 과격성은 서로 다른 범주의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혼동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진보 이념과 진보 세력이 더 필요하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오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가정 파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생명의 위기, 정신적ㆍ물질적 대외 종속의 심화, 금권정치의 심화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고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행복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수세력과 경쟁할 체계적이고 세련된 진보세력이 필요하다.
진보세력이 중도로 ‘변절’하기, 또는 좋은 말로 ‘외연 넓히기’를 아무리 해도 지금과 같이 행동하면 여전히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세력의 보수화가 아니다. 성숙하고 진중한 진보세력,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김영명ㆍ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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