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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화와 엔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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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화와 엔리케

입력
2007.02.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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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아시아와 신대륙으로 진출하는 15세기 대항해 시대는 동서양 문명의 진로를 바꾼 분수령이었다. 이전까지 이슬람과 중국의 문명은 유럽인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로 저만치 앞서 있었다.

나침반, 화약, 종이 같은 선진 기술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흘러갔고, 이슬람 문명의 첨단 수학, 과학, 의학 기술은 유럽이 과학에 눈을 뜨게 했다.

그러나 중국이 해상교역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으로 폐쇄의 길을 선택하고, 유럽 국가들은 신항로와 신대륙 개척에 나서면서 문명의 판도는 역전됐다. 신대륙에서 쌓은 부가 산업혁명을 촉발하면서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 명나라 환관 정화(鄭和)와 포르투갈의 왕자 엔리케는 그 엇갈리는 역사의 갈림길에 선 두 인물이다. 정화는 1405년부터 28년간 선박 200여 척, 승무원 2만7,000명의 대함대를 이끌고 7차례에 걸쳐 멀리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원정했다.

대항해의 원조인 셈이다. 87년 뒤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함대는 선박 3척에 선원 120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후 명나라가 해금정책으로 돌아섬으로써 정화의 위대한 항해는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폐쇄적 중화주의에 빠진 중국은 결국 아편전쟁의 치욕을 당하게 된다.

▦ 1415년 포르투갈에서는 엔리케 왕자가 아프리카 경략에 나선다. 그가 파견한 탐험선은 서아프리카 해안을 하나 둘 정복해 가면서 마침내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연다.

포르투갈은 이 항로를 통해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인도양의 이슬람 세력을 제압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전성기를 맞는다.

엔리케는 각지에서 유능한 선원과 선박기술자를 끌어 모아 조선소와 선원학교를 세우는 등 해양개척에 온 삶을 바쳤다. 한 번도 항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항해왕'이란 호칭이 붙는다.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임직원을 상대로 한 훈시에서 엔리케를 배우자고 제안했다. 엔리케는 국적에 관계없이 인력을 확보해 다양한 정보와 혁신적인 기술을 효과적으로 확립했다고 지적한 윤 회장은 대항해 시대의 도전정신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한국의 개방의지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서게 됐다. 개방이 절대선일 수는 없다. 개방의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폐쇄적 문명이 개방적 문명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언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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