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잘해 명문대 법대에 들어간 한 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로 임용된 그는 중간에 외국유학도 다녀왔다. 부장판사로서 업무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법원 내에서 깐깐한 선배 법관을 뜻하는'벙커'라는 별명이 따랐다. 고등부장 '승진'은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사실상의 승진 인사를 통해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인사에서 그는 낙담했다. 승진자리로 여기지는 그 자리에 일부 후배 기수들까지 배치됐지만 그는 수평이동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법원 내부 통신망을 떠올렸다. 최근의 판사 석궁 피습 사건을 들어 사법 불신을 키우는 당사자를 대법원장이라고 지목하면서 그의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글을 통신망에 올렸다.
이상의 시나리오는 밑도 끝도 없는,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시나리오다. 순전한 상상력의 발동이다. 20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소설 같은 시나리오"라는 전제 아래 대법원장을 정면 비판한 글이 법원에 평지풍파를 몰고 오고 있다.
그는 그 글에서 대법원장과 친한 판사를 실형 선고한 판사와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좌천됐다고 해석, 법원 인사의 난맥상을 지적하려 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전제대로 그의 주장엔 어떤 구체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 판사 대다수로부터 "인사 불만에서 나온 감정의 토로"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분위기이다.
법원 개혁에 대한 요구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사법부 수장을 공격하는 것이 과연 "사법 개혁을 위한 열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내부 비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키울 뿐이다.
사회부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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