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녀왔다. 동네 새로 생긴 교회에서 바자회를 한다고 하니, 이참에 평생 안 하던 좋은 일도 좀 하고 없는 옷도 한두 벌 사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지상 5층, 지하 3층, 높고 깊게 지어진 교회건물 안에는 신기하게도 무슨 스포츠센터도 자리잡고 있었다(알고 보니 교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라고 했다. 영과 육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조심조심 밟고 들어간 교회에서는, 그러나 바자회가 열리고 있지 않았다. 대신 수십 명의 의류도매상인들이 한 손엔 마이크를, 다른 한 손엔 지폐 다발을 쥐고, 떠들썩하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상인들 중간중간에 곱게 늙은 집사님들이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교회주보를 나눠주고 있었다. 바자회가 아니나요? 아내가 한 집사님에게 물었다. 수익금은 좋은 곳에 씁니다.
그나 저나 새댁, 교회는 다녀요? 집사님은 오랫동안 아내를 잡고 이런저런 말을 했다. 우리 목사님이 미국 유학도 다녀오시고. 아내와 나는 팬티 한 장 사지 않고 교회를 빠져 나왔다.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학 가서 순 나쁜 것만 배워왔나 봐. 아내 말을 듣고 뒤돌아보니, 거기 정말 큰 십자가가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학파 십자가였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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