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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고독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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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고독한 한국인

입력
2007.02.2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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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보면 한국인은 고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같다.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내느라 정신이 없고, 사람에 치인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각종 연고ㆍ정실 문화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줄서기와 쏠림에도 능한 사람들이 고독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가.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볼 일이다.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고독한 국민도 드물다. '고독'은 주관적 심리 상태인 반면, '고립'은 홀로 있는 객관적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교 활동이 매우 활발한 마당발도 얼마든지 고독할 수 있다.

● 세계 최고수준의 '고독산업'

인간은 누구나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은 유별나다. 그런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게 생존 본능으로 자리 잡았다.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성, 좁은 국토에다 산지가 많은 탓에 생겨난 초밀집 주거 형태, 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이런 특성에 맞게 권력 행사가 이루어져온 오랜 역사 등이 만든 결과이리라.

한국인의 중앙지향성이 '중앙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늘 중앙에 모든 권력ㆍ부가 몰려있고 그곳에서 모든 주요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중앙 근처에 있어야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거니와 적어도 불이익은 당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고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지만, 실은 고독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역설같지만,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이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고 살아간다. 자신은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서만 전문가다. 고독해선 안된다는 강박으로 의례적인 사교에 몰두하면서 질주하는 게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늘 불황을 모르는 성장산업도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주는 '고독 산업'이다. 대표적인 고독산업인 엔터테인먼트ㆍ게임ㆍ도박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인터넷ㆍ휴대전화 산업도 고독산업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건 실없는 농담이다. 인터넷을 고독 퇴치를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데 있어서 세계 1위일 뿐이다.

고독은 중독을 부른다. 중독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국인은 극단으로 밀고 들어가는 걸 사랑한다. 한국인의 '일 중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가능케 했지만, 모든 중독이 그런 축복만 가져다 준 건 아니다. 스트레스ㆍ음주ㆍ섹스ㆍ자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들은 한국인들에게 "왜 사니?" 라는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정치는 고독산업인 동시에 중독산업이다. 한국인은 정치를 저주하면서 숭배하는 정치중독증에 빠져 있다. 정치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자신이 무엇에 분노할 만큼 사회에 관심이 있고 의식이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용도로 기능하는 산업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에게도 중독산업이다. 정치중독은 마약중독보다 더 무서워 멀쩡한 사람도 정치에 중독되는 순간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한다.

● 易地思之 능력 상실, 남 탓만

정치는 출세를 이루게 해 주는 길이지만, 출세는 사실상 고독해지기 위한 투쟁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욱 고독해진다. 한국에선 출세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독을 다룰 줄 모른다.

출세욕망에 불타는 사람들은 늘 자기 밖의 관계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느라 자신에 대해 가장 무지한 사람이 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걸 깨닫고 인정하면 슬기롭게 대처할 수도 있으려만, 그걸 모르니 일이 뜻대로 안되면 남 탓을 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성찰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독을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때론 고독을 견뎌내면서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역지사지(易地思之)도 가능해진다. 역지사지 능력의 박약은 '고독한 한국인'의 사회적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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