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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들의 희망 '퓨지온' 개발 주역 강명철 트라이머리스 수석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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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들의 희망 '퓨지온' 개발 주역 강명철 트라이머리스 수석부사장

입력
2007.02.1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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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바이러스(HIV)는 인체 세포와의 생존경쟁에서 교묘한 전략을 활용하기로 악명이 높다.

약물의 공격에는 신속히 돌연변이를 일으켜 빠져나가고, 잠복과 증식을 적절히 번갈아가며 숙주 몸 속에 오래도록 산다.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과 의사들은 HIV가 자신들만큼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느낄 정도다. 환자들은 ‘칵테일 요법’에 따라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약을 섞어서 복용하지만 그래도 30% 정도는 내성이 생겨 손을 못 쓰게 된다.

그러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 2004년 시판되기 시작한 벤처기업 트라이머리스(Trimeris)사의 신약 퓨지온(Fuzeon)이다. 이 약은 지금까지 나온 약들과는 작용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획기적인 신약이다. 첫 해 매출이 2억5,000만 달러(약 2,340억원)에 이르렀다.

이 신약 개발에 참여한 주역 중 한 명이 한국인인 강명철(56) 트라이머리스 수석 부사장이다. 그는 서울대병원 병리학과 김철우 교수가 설립한 바이오인프라의 최고경영자(CEO)도 맡아 1월부터 서울대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16일 그를 만나 퓨지온 개발의 뒷이야기와 한국 신약개발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HIV와 면역세포 융합 막는 새 펩타이드 제품화 g당 천문학적 생산비용 25달러 수준으로 대폭 낮춰 한국의 연구 제안서 보면 근거 없는 메커니즘 공략 일쑤 실은 알려진 곳에 기회 더 많아"

“퓨지온이 획기적인 이유는 기존의 약들과는 전혀 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HIV는 면역세포에 붙어서 우리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데 퓨지온은 이러한 세포 융합을 막아준다. 1993년 미국 듀크대에서 2명의 생물학 교수가 HIV에 있는 펩타이드(단백질의 일부)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제품화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퓨지온은 아미노산 36개로 구성된 펩타이드이다. 이렇게 긴 펩타이드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당시 생산가격으로 환산해 환자 한 사람이 1년간 이 약을 복용하려면 96만 달러(8억9,856억원)가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퓨지온을 공급하려면 연 2,3톤의 펩타이드를 생산해야 했는데 90년대 중반 전세계 펩타이드의 생산량은 모두 합해봐야 300㎏에 불과했다.

세계 굴지의 제약사인 GSK 화학개발부를 이끌던 강 대표는 95년 트라이머리스에 합류한 이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퓨지온 개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전세계 논문을 뒤지고, 그리스의 시골로 날아가 연구자를 만나는 등 저렴한 새 펩타이드 생산공정을 도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g당 1만2,000달러였던 펩타이드 생산비는 현재 g당 25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에이즈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을 뿐 아니라 펩타이드 산업 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이윤식 교수를 만났고 한국의 유기합성 기술은 퓨지온 개발에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퓨지온 논문을 처음 발표했던 듀크대 교수 2명이 시작한 작은 바이오벤처가 일을 낼 줄은 누구도 몰랐다. 나 역시 탄탄한 대형 제약사에서 작은 벤처로 옮기면서 고민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스스로 제품화에 뛰어들었고, 그들이 HIV 단백질의 대가들이었기에 확신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 설사 신약에 실패하더라도 뭔가 얻으리라고 믿은 거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동향에 대해 뼈아픈 조언을 했다. “연구 제안서를 컨설팅해 보면 누구나 솔깃한 연구를 한다. 처음 논문 나온 지 2,3년밖에 안 됐고, 가능성은 크지만 임상 근거가 적은 메커니즘을 공략한다.

하지만 결혼은 섹시한 상대가 아니라 충실한 상대와 하지 않나? 덜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임상적으로 잘 알려진 메커니즘을 공략하면 제품화 기회가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강 대표는 “GSK의 경우 15년 정도 연구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신약 시장에 대한 안목을 갖고 연구방향을 설정하는데, 한국의 경우 경험 없이 서둘러 연구주제를 잡다 보니 과욕을 부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바이오인프라에서 암진단 시약 관련 연구프로젝트를 조언하고 있다. 그는 서강대 화학과, 미국 오리곤 주립대에서 공부한 뒤 듀폰, GSK를 거쳤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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