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기고문은 읽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 글은 일단'진보 진영'에서 부당하게 참여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왜 나를 비난하느냐는 투정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글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투정 자체보다 대통령이 나서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공허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 의도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온갖 세력의 정부 비판에 대해 억하심정을 토로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며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하지만 유럽 순방에 앞서 작성했다는 이 글은 차원이 다르다.
먼저, 중요한 외교적 과제를 앞두고 진보 진영에 대한 공세에 정열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이 안쓰럽다. 더 중요한 점은 진보 진영이라는 게 대통령이 심각하게 문제삼고 나서야 할 사회적 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언론 등은 헌법으로 보장된 국가기관이고 사회제도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공세나 비판은 내용의 타당성 여부가 논란이 된다. 반면 진보 진영 같은 것은 실체도 확인하기 어렵고 대통령이 문제를 삼을 사회적 제도도 아니다.
실체도 애매한 대상에 대해 200자 원고지 40매가 넘는 분량의 언설을 쏟아내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유명 논객 누구를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특정 학자나 정치 성향을 가진 일부 인사들의 언동을 이렇게 구구절절 반론하는 것이 대통령의 할 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진보 진영만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겨냥해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중도니 하는 얘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이런 실체 없는 논쟁에 끼어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설날메시지를 통해 "저도 국민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던 노 대통령이 그 직후 보낸 메시지가 겨우 이런 내용이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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