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동구가 여자가 되는 수술을 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남달리 힘이 세고 덩치도 큰 동구는 꿈 많은 고등학교 1학년. 그런데, 녀석의 꿈은 남들과 좀 다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차근차근 돈을 모아 수술을 해서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이다. 짝사랑하는 일어 선생님 앞에 마돈나처럼 끝내주는 여자가 되어 나타나는 꿈을 꾼다. 지난 주 베를린 영화제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월드 프리미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이해준 감독, 2006)의 주인공 오동구의 이야기이다. 천하장사>
소녀가 되고 싶은 녀석의 꿈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남다른 실력을 알아본 씨름부에서 동구에게 유혹이 들어온다. 동구가 원하는 수술을 하는 데 부족한 돈이 500만원이고 ‘인천시장배 고등부 씨름대회’ 우승 상금도 500만원이다. 천하장사가 되면 마돈나가 될 수 있다. 아홉 살 무렵부터 수줍게 립스틱 바르고 마돈나의 춤을 멋들어지게 따라 하던 동구에겐 웃통 벗고 남자들과 살 비비는 것이 부끄럽고 남우세스러운 일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동구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한다. 동구가 상금을 어디다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친구들의 환호 속에 ‘like a virgin’을 열창하면서 마돈나가 되었다. 그의 빨간 드레스는 장만옥의 그것처럼 잘 어울렸다.
소년이 꿈을 이룬 이야기는 따듯한 성공담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라니. 영화를 보고 나서 뜨악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그래서 엄마는 동구 앞에 놓인 모진 현실을 걱정한다. 동구를 패고 삽차로 찍어 버릴 듯 화를 내는 아빠도 내심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예전 같으면 골방에나 숨어 있어야 할 이야기가 동구의 입을 통해 당당하게 세상에 나왔다. 동구는 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에게 자신이 여자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한다. 몽정을 하고 팬티를 빨며 여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아빠 앞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서서 ‘이게 나’라고 외치기도 한다. 동구의 입장에서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유별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 기준에 비추어 보면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사회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문제로 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 연구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태아에서 발생하는 단계에서 작용하는 호르몬이 남자와 여자가 가진 기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생명이 시작하는 단계에서 유전적으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사람이라면 모두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22쌍의 염색체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고 한 쌍의 성염색체만 서로 다르다. 여자는 성염색체로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남자는 X염색체 하나와 Y염색체 하나를 가지고 있다. X와 Y 하나의 염색체만을 제외하면 남자와 여자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남자와 여자의 기질 차이가 이 자그마한 차이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 중에서 많은 수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전자의 작은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호르몬의 차이가 남녀의 기질적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배아 모두 엄마 뱃속에서 처음 두 달 간은 큰 차이가 없다. 미분화된 생식선과, 울피계와 뮬러계라고 부르는 두 개의 생식관을 초기 태아는 모두 가지고 있다. Y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태아는 뮬러계가 퇴화하고 울피계가 발달하도록 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남자가 되고, Y염색체가 없는 경우는 반대로 울피계가 퇴화하고 뮬러계가 유지되어 여자가 된다. 이어 남성호르몬이 생식기를 발달시킨다. 아울러 임신 16주에서 28주 사이에 생식기를 발달시키는 남성호르몬이 뇌에도 영향을 미쳐 남자와 여자의 기질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도 여럿 있다.
대부분의 남성호르몬은 고환에서 만들어지지만 부신에서도 조금씩 만들어진다. 여자는 고환은 없지만 부신은 있고 따라서 여자도 적은 양의 남성호르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자 태아의 부신에서 남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지면 외부 생식기의 남성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부 생식기의 경우엔 발달의 단계를 지나쳐 버려서 남성화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 놓인 소녀들을 주의 깊게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이 대부분 말괄량이이고 남자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남성호르몬에 반응하지 않는 소년들은 울피계나 외부생식기가 발달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형적인 여성적 성향을 보이고 아기나 인형 등에 관심이 높다.
성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조절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변화도 남녀의 기질 차이와 호르몬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발달의 결정적인 시기에 남성호르몬에 노출된 개체들이 전형적인 남성적 행동을 한다. 기질의 분화가 일어나기 전에 거세한 수컷, 혹은 남성호르몬에 노출된 암컷은 자연적인 성과 반대 성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행동을 보인다. 암컷 원숭이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면 공격적이고 주도권을 쥐려는 성향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호르몬의 영향만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가진 기질의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남성적 혹은 여성적 기질이라고 불리는 것이 남녀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음을 좀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는 있겠다. 숫자가 적어서 정상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생물학적인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남자 혹은 여자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동구가 굳이 수술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구가 그냥 동구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 아니겠는가?
■ 행동유전학 - "인간 성격 등 행동 결정에 유전적 영향 커"
행동유전학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갈튼이 이 분야를 열었다. 갈튼은 자신이 천재라고 분류한 유명인사들의 가족을 통계학적으로 연구해서 정신적인 능력이나 기질 같은 것들이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우생학의 토대가 되었고 우생학이 나치 철학의 바탕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질이나 능력을 유전과 연결시키는 설명에 대해서 커다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 따로 키워진 형제들, 입양된 아이와 입양된 가정의 아이, 이복형제들 등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서 행동유전학자들은 외향성, 원만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 지적 개방성 같은 기질들과 유전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모의 감정 표현, 가정에서 지적 자극의 수준, 규율의 형태, 부모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 사회경제적인 수준과 같은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성격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천성인지, 환경 혹은 교육인지를 두고 논란은 여전하다. 남자와 여자가 기질에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같은 맥락 속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공평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자와 여자의 기질 차이에 생물학적인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를 규정하는 것이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개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막는 굴레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일우/과학평론가,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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