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는 것은 창피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한다. 창피함이란 어떤 기준과 체면에 이르지 못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결국 나이듦이란 기준을 따르려고 애쓰는 과정이겠다. 기준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해줘야 성립하니까, 가장 사실에 가깝고 가장 평범에 가까운 지점이 된다.
그래서일까. 어른들보고 사자를 그리라 하면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워한다. 이미 사자의 ‘기준’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그 사실과 자기 그림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차이가 창피하니까. 자기가 그린 사물과 현실의 사물이 닮지 않았음을 의식해 그림 그리기가 더 이상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아이들은 다르다. 거침없이 몇 초 만에 ‘훌딱’ 사자를 완성한다. 과감히 생략하고 과장한 사자, 아이들은 ‘합리적’이라는 검열 없이 자신의 느낌대로 그림을 창조한다.
그렇게 아이들 마음처럼 과감하게, 과장되게 그려진 그림책에서는 현실인지 상상인지 꿈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마구 나타난다. 무생물도 인간과 같이 살아있다고 생각해 눈, 코, 입을 그려서 의인화한다. 사람처럼 이름을 가지고, 말을 하며, 두 다리로 걷거나 옷을 입고, 화를 내고, 거짓말도 하며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며….
<뉴요커> 에 만화를 그려 쌓은 명성으로 <뉴스위크> 로부터 ‘카툰의 왕’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윌리엄 스타이그는 나이 60이 넘어서, 남들 은퇴할 나이에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 <부루퉁한 스핑키> <장난감형> 같은 그림책을 만든 할아버지가 됐다. 그의 그림책에는 주로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우습게, 황당하게, 때론 망가지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으면서도 생명체로서의 공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난감형> 부루퉁한> 아빠랑> 뉴스위크> 뉴요커>
<멋진 뼈다귀> 에서 장미꽃 한 송이와 뼈다귀를 들고 다니는 돼지,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 에서 여우는 남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치과의사 작은 쥐는 현명한 사람으로, <녹슨 못이 된 솔로몬> 에서 코딱지를 후비다가 녹슨 못이 되는 토끼와 애꾸눈 고양이, <생쥐와 고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에서도 동물이 주인공이 되어 사회를 풍자한다. 당나귀> 생쥐와> 녹슨> 치과> 멋진>
말 타고 다니던 시절에 태어나 우주선이 왕복하는 2003년 10월3일 세상을 떠난 윌리엄 스타이그는 자식들이 9시 출근, 5시 퇴근하는 일자리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묶이지 않고자 했던 그의 삶은 <엉망진칭 섬> <자바자바 정글> <슈렉> 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얼마나 신나며 또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어른도 충분히 아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슈렉> 자바자바> 엉망진칭>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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