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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국경없는 마을 '설 없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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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국경없는 마을 '설 없는 마을'로

입력
2007.02.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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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지에(春節ㆍ중국 설) 경기가 이렇게 없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경기 안산시 원곡본동 외국인 밀집거주지역인 이른바 ‘국경 없는 마을’에서 꼬치 집을 운영하는 중국동포 이옥희(50ㆍ여)씨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 만큼 설 경기도 얼어붙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예년 같으면 이맘 때 길거리가 꽉 차 걷기도 힘들었다”면서 “지난해부터 경기가 나빠진 데다 최근 끔찍한 살인사건과 지속적인 단속이 겹치면서 외국인들이 상당수 빠져나가 설 경기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6일 국경 없는 마을은 썰렁했다. 지하철4호선 안산역에서 원곡본동사무소까지 250m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있는 이 마을은 평소 맨주먹 노동자들 특유의 ‘활력’으로 넘쳤지만, 요즘은 귀가를 재촉하는 발걸음에서만 그런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가게마다 내걸린 중국식의 빨간색 간판마저도 가라앉은 분위기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 셋씩 모여 길을 가로지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깨는 처졌고 표정은 어두웠다. ‘국제전화 싸게 거는 곳’이라는 간판 밑에 설치된 공중전화에서 고향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표정에서만 잠깐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중국 산둥성 출신의 황핑더(29)씨는 “한국말이 아직 서투르다”며 수줍게 웃은 뒤 “설 잘 보내라고 집에 전화했다. 빨리 돈 벌어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전봇대에 가로등처럼 설치된 CC(폐쇄회로)TV가 보였다. 안산경찰서가 지난해 이 곳의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것이다. 그래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랑곳 않고 술 취해 떠들고 싸우고 한단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권모씨는 “장사가 잘 될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부로 휴지를 버리거나 싸워도 미소로 참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면서 “워낙 매출이 줄다 보니 파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더 많다”고 푸념했다.

이 곳 상권이 얼마나 위축됐는지는 가게 진열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년 같으면 술 과일 선물세트 등을 빼곡히 쌓아놓았을 가게들이 지금은 평소와 다름없다. 하나할인백화점을 경영하는 오모(34)씨는 “재고로 남을 게 뻔한데 누가 설 선물용품을 갖다 놓겠냐”며 “경기가 나빠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졌지만 월세는 오르고, 단속은 심해져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부동, 와동으로 빠지거나 건설경기가 좋은 용인쪽으로 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 곳이 계속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믿는 주민은 없다. 안산시는 러시아 네팔 몽골 인도네시아 등 20여개국 2만여명이 모여 사는 이곳을 올해 외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거리로 조성키로 하고 현재 세부계획을 마련 중이다. 이 지역의 각국 음식점은 지금도 인기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안산시 관계자는 “자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72개 외국 음식점은 각국 고유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어 이를 맛보려는 내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류성환(38)씨는 “일감이 많이 줄어 예전 같은 활기를 찾아보긴 어렵지만, 역사가 오래된 주거지인 만큼 외국인 노동자 정책이 조금만 유연해지면 금세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았다는 필리핀인 에스더 다가트(26ㆍ여)씨는 “힘들고 슬플 때가 많아도 여기는 우리들의 보금자리”라며 “많은 노동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삶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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