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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형진 고려大교수, 소월·백석의 詩원형 살려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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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형진 고려大교수, 소월·백석의 詩원형 살려내 출간

입력
2007.02.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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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뽕닢에 빗방울이 친다 / 멧비둘기가 난다 / 나무등걸에서 자벌래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백석,> <산(山)비> 전문) 단 석 줄의 절제된 언어 속에, 비 내리는 적요한 산 속에서 일어나는 연쇄 반응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초고속 촬영의 영상이 펼쳐지는 HD 화면이랄까. 아찔하도록 감각적이고 함축적인 시어들을, 우리 시는 일찍이 구축해 두고 있었다.

백석(본명 백기행ㆍ1912~1995 사망 추정)과 소월(본명 김정식ㆍ1902~1934)의 시가 발표 당시의 형태로 살아 왔다.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펴냄)과 ‘원본 김소월 시집’(깊은 샘 펴냄). 방언과 토속어는 물론 당대의 신조어까지 당시 표기대로 살린 이 시집들은 원본을 보는 듯한 감흥을 선사한다.

살을 에는 삭풍이 부는 겨울밤, 마려운 오줌을 더는 참지 못하고 한잠을 깨 일을 보는 아이를 산문시 형식으로 그린 <동요부(童尿賦)> 는 우리 시대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생활 성정을 제시한다. ‘ 긴 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 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하는 소리’(1939년 문장). ‘오줌 누는 아이에 부침’이란 익살스런 뜻을 지닌 한자어 제목답게, 백석은 일상속에 숨은 골계의 순간을 한국어로 엮어 낸다.

책을 엮은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백석의 시가 현대 시사에서 갖는 기본적인 성취는 토박이어와 옛말을 포괄하는 모국어의 확장에 있다”며 “다채롭고 화려한 감각어 등 풍요로운 우리의 낱말밭을 주시하고, 거기 심어져 있던 주옥 같은 말들을 캐내어 쓴 최초의 시인”이라고 백석의 국문학적 위치를 규정했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고 교수는 고려대 도서관은 물론 연세대ㆍ서강대 도서관의 원본 잡지를 찾아내 일일이 비교, 작품의 원형에 밀착했다. 25년전, 학계 최초로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뒷門 박게는 갈닙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쟈’ 개벽 제 19호(1922년 1월)에 실렸던 그 모습 그대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도 살아 왔다. 시집 <진달래꽃> 의 초간본에 수록됐던 형태다.

<원본 김소월 시집> 은 시집 <진달래꽃> 의 초간본 원문을 영인과 함께 수록하고, 소월이 죽은 뒤 스승 김억이 엮은 시집 <소월 시초> 에 실린 12편도 포함했다. 그 간 지인이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나돌던 영인본도 최초로 일반 공개, 감회를 더해준다.

서정시의 대가일뿐 아니라, 민족혼을 부르짖기도 했던 소월의 모습까지 복원했다. ‘달은 쇠끝 갓튼 지조가 튀여날 듯 / 타듯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빗나섯다 / 민족을 위하야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님.’ <제이, 엠, 에쓰> 라고 제목 대신 이니셜만 덩그마니 맨 위에 달린 이 시는 오산학교 교장 조만식에게 헌정된 1934년의 작품이다.

정지용 김기림 등 해금 작가들의 책을 내기도 한 깊은 샘 출판사의 박현숙 대표는 “올해 안으로 만해와 영랑의 작품을 영인본과 주석본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형진 교수는 “소월이 우리말의 선율을 아름답게 가꾼 시인이고 지용이 우리말을 조탁한 시인이라면, 백석은 우리말을 채집한 시인”이라고 평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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