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27일. 회사원 양병수(당시 30세)는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들이 다운증후군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젊지만 장래가 불안했던 그는 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아들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 불행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이와 세상의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몹쓸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어난 지 7일밖에 안 된 아이를 안고 친구 차에 삽과 곡괭이를 실은 채 정처 없이 떠났다.
스스로 “미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이가 추울까 봐 차 안의 히터를 틀며 부정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했다. 이별을 고하기 위해 포대기를 여는 순간, 세상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아이를 품에 꼭 안으며 “미안하다. 잘 키우겠다”고 수 없이 맹세를 하며 서울로 돌아왔다.
맨손으로 칼 든 강도를 잡아 경찰에게서 받은 ‘용감한 시민장’ 상금 100만원을 공익재단에 기부한 양병수(47)씨와 큰 아들 호철(17)군의 17년 전 이야기다. 양씨는 지난달 8일 서울 장위동 자신의 식당 맞은편에 있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돈을 강탈해 달아나는 강도를 쫓아가 격투 끝에 붙잡았다. 그는 푸르메재단이 호철군과 같은 처지의 다운증후군 환자들을 위해 재활전문병원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상금 전액을 쾌척했다.
양씨는 “새벽에 들어오는 나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맞아주고, 매일 휴대폰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호철이가 없었다면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희귀병을 앓는 형을 돕다가 놀림을 받아 키가 크지 못한 동생 성호(16)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올해 고교에 입학하는 성호는 키 150㎝, 몸무게 48㎏으로 또래들보다 왜소하다.
어릴 때 형과 함께 다니며 놀림을 받은 성호가 스트레스를 이기기 못하고 보통 아이보다 성장이 더뎠기 때문이다. “호철이의 상태가 조금만 좋아지고, 성호 키가 좀더 자라준다면 바랄 것이 없죠.” 설을 앞둔 양씨의 간절한 새해 소망이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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