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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량치차오 : 문명과 유학에 얽힌 애증의 서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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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량치차오 : 문명과 유학에 얽힌 애증의 서사(5)

입력
2007.02.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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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국가주의의 결합, 왜 구한말 지식인들은 열광했나이혜경 지음 / 태학사 발행ㆍ304쪽ㆍ1만5,000원

청조말의 계몽운동가인 량치차오(梁啓超ㆍ1873~1929) 사상입문서가 나왔다.

량치차오는 현대사에서 캉유웨이, 탄쓰퉁 등과 함께 청조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려했던 ‘변법파’ 의 한 명 정도로 기억되고 있지만, 구한말의 지식인들에게 끼친 그가 지적 충격은 과소 평가될 수 없다.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안창호 등 내로라하는 당대의 지식인들은 그의 소설과 논문들을 소개했고, 계몽 잡지나 신문들은 앞 다투어 그의 글을 번역해 실었다. 1900년대 국내 사상계에서 량치차오는 이후 80년대의 마르크스나 90년대의 푸코 필적할 정도의 슈퍼스타였다.

이 책은 량치차오 사상의 변천사를 4개의 시기로 나눠 개관한다. 입헌군주제를 추구하던 변법 시기, 유학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폄하하고 서양의 사회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공덕(公德) 시기, 입헌군주제 대신 비이기적인 덕성을 갖춘 엘리트들에게 정치를 맡기자는 개명 전제 시기, 1차 대전의 참상을 목도한 후 유학을 서구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만년 등이다.

왜 량치차오일까? 저자 이혜경은 량치차오가 유교의 도덕주의와 국가주의를 결합시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약육 강식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국가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시에 자유와 평등, 권리와 자주 등의 근대적 이념을 유교 사상에서 차용한 ‘공덕(公德)’으로 명명, 민중들에게 이를 독려함으로써 근대국가를 완성할 수 있다고 봤다.

그가 시도한 국가주의와 유교적 도덕주의의 결합은 일제의 ‘교육 칙어’나 우리나라의 ‘국민 교육 헌장’ 등 이후 각국에서 다양하게 변주됐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근대 사상사에서 그의 위치를 간과할 수 없다는 평가다.

조남호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성공적인 경쟁 주체를 모방해 따라잡아야 한다는 량치차오의 사회 진화론적인 문명론은 동아시아 지식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며 “폄하와 과대 평가라는 극단을 오가긴 하지만, 유학의 현대적 가치를 필생의 화두로 삼았던 문제 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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