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이러니다. 영화시장과 다양한 영화상영은 늘 정반대로 움직인다. 시장이 북적대면 작은 영화들은 대부분 설 자리가 없다. 결국은 한국영화시장 특유의 한 두 영화의 스크린과 관객 ‘싹쓸이’이가 이유인데. 그렇다고 한국영화입장에서는 그것을 무작정 비판만할 일도 아닌 것이 자리가 비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외화들이 차지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의 일여덟 편이던 영화가 이번 설 연휴에는 어지러울 만큼 많은 것도, 한국영화 눈치를 보던 외화들이 자신 있게 나오는 것도 시장위축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관객이 24.9%나 줄어든 추세는 설 연휴가 있는 2월이라고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관객 입장에서야 오랜만에 그야말로 문화다양성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니 싫지는 않다. 설 연휴 트레이드 마크인 한국 코미디는 물론이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작들까지 대거 선을 보이고 있다.
먼저 한국영화. 일주일 먼저인 8일 개봉해 첫 주 70만명으로 설 특수 흥행 선점작전에 성공한 김혜수 주연의 <바람 피기 좋은 날> (감독 장문일)과 3명의 남자(신현준 최성국 권오준)가 의기투합한 <김관장 대 김관장> 에 14일 두 편의 한국영화가 가세했다. 김관장> 바람>
<색즉시공> 의 흥행 트리오인 배우 임창정 하지원, 감독 윤제균이 5년 만에 다시 손을 잡은 <1번가의 기적> 의 무기 역시 웃음. 산동네 철거청부를 맡은 어설픈 깡패 필제와 그에 맞서는 동양챔피언을 꿈꾸는, 산동네 처녀복서 명란의 충돌이란 웃음의 주재료에 경상도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동네 아이들의 양념이 알맞게 뿌려진다. 색즉시공>
또 하나의 무기는 영화의 배경이 말해주듯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이 보여주는 감동.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웃음 속에 슬쩍 감추는 윤 감독 특유의 재치가 여전하다.
<1번가의 기적>에 임창정이 있다면 <복면달호> (감독 김상찬 김현수)에는 차태현이 있다. 가면을 쓰고 트로트를 부르는 록가수 지망생의 좌충우돌과 애환이 차태현의 능청연기를 통해 발휘된다. 색깔은 다르지만 가수, 음악을 소재로 해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 의 분위기 덕을 볼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 여기에 전혀 다른 색깔인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소재로 가족의 비극성을 극대화한 <그놈 목소리> (감독 박진표)가 ‘개봉 2주만에 240만 명’ 이란 흥행기록을 가지고 설 연휴까지 내달린다. 그놈> 미녀는> 복면달호>
외화들의 기세도 만만찮다. 이들의 무기는 아카데미영화상 후보작이란 타이틀과 그에 걸맞는 작품성.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을 둘러싼 영국왕실과 국민들의 감정을 다뤄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더 퀸> (감독 가버 추보)은 권위와 품위에 감춰진 인간적인 아픔으로,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서 명성을 다시 한번 인정 받은, 아카데미 2개 부문 후보작 <아버지의 깃발> 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 현장인 일본 이오지마(유황도) 전장에서 인간의 비극과 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아버지의> 더>
30년 전의 추억과 영광을 다시 한번 되찾으려 나선 실베스터 스탤론도 <록키 발보아> 로 중년관객을 부른다. 역시 스타 배우의 명성을 접고 감독으로 나선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 와 코믹배우 아담 샌들러가 리모콘으로 마음대로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바벨> (감독 프랭크 코라치)도 설 연휴까지 이어진다. 바벨> 아포칼립토> 록키>
동심을 자극하는 가족영화도 빠지지 않았다. 깜찍한 아역스타 다코다 패닝이 새끼 돼지를 사랑하는 <샬롯의 거미줄> (감독 개리 위닝)에 이어 환상의 세계를 통해 사춘기 아이들의 우정과 용기를 다룬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감독 가버 추보)가 미국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탄 원작을 읽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밀의> 샬롯의>
아이들을 두고 오랜만에 부부가 오붓이 성인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케이트 윈스렛의 진한 러브신이 나오는 <리틀 칠드런> (감독 토드 필드)이 있다. 리틀>
명절연휴면 상업영화가 판을 쳐 오히려 극장가기를 포기하는 예술영화팬들도 이번에만은 그럴 필요가 없다. 스크린이 많지는 않지만 영국의 마렉 카니에프스카 감독의 <실종> , 헝가리의 코나 먼드루사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 (감독)이나 대만의 거장 허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 , 일본 야마다 요지 감독의 <황혼의 사무라이> 도 있으니까. 황혼의> 쓰리> 천국의> 실종>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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