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안성휴게소에 떡 판매점을 차렸던 노모(45)씨는 두달 만에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100원을 벌면 50원을 한국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에 자릿세 격으로 내야 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밑지는 장사를 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질 좋은 국산 쌀 대신 중국산 싸구려 찐쌀을 쓰면 그럭저럭 적자는 면할 수 있었지만 20년 떡장사 인생의 양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렇다고 양질의 재료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는“손님들이 뜨내기여서 바가지 씌우는 게 아니다”며 “고급 재료로 맛나게 만들고 싶어도 매출의 절반을 자릿세로 내는 구조 때문에 업자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장사를 접을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를 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털어놓았다.
●휴게소 음식매장 수익 먹이사슬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이 시중 음식점에 비해 비싸고 부실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장경수 의원이 15일 공개한 도로공사의‘휴게소 일반 현황(2007년 2월 현재)’등에 따르면 휴게소 내 음식 매장은 총 매출액의 최대 55%를 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에 내고 있다. 번 돈의 절반이 자릿값으로 사라지는 만큼 적자를 면하려면 음식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휴게소 음식매장 운영은 건설업계의 재하청과 비슷하게 이뤄진다. 도로공사로부터 휴게소 운영을 임대 받은 업체가 납품 형식으로 매장을 재임대하고 있다.
전국 140개 휴게소 현황을 분석한 결과, 매달 휴게소 음식매장 총매출 중 10~15%가 휴게소 임대료 명목으로 도로공사에 입금되고, 35~40%는 운영업체가 챙긴다. 매장 업주들은 나머지 50% 안팎의 돈만으로 재료비와 인건비를 부담하며 장사를 해야 한다.
한 매장 업주는 “운영업체들이 국민 세금으로 지은 휴게소를 임대 받아 운영하면서 총 매출의 35~40%를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재임대 구조로 인해 운영업체들만 이득을 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여주휴게소의 한 매장 업주도 “앉아서 판매가의 절반을 떼어가는 지금과 같은 수익배분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기는 꼴”이라며 씁쓸해 했다.
때문에 휴게소 내 음식 매장을 내 준다고 해도 고사하는 일까지 생긴다. 경기, 충청지역의 고속도로 휴게소서 9년 남짓 종업원으로 일했다는 박모(43ㆍ여)씨는 “한 휴게소 소장이 가게를 하나 내주겠다고 했지만 높은 자릿세 때문에 되려 손해만 볼 것 같아 거절했다”고 말했다.
●비싼 가격 해결 방법은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고스란히 휴게소 음식값과 품질 문제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도로공사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40개 휴게소에서 판매되는 우동 250여 개 중 120개 정도가 시중가 보다 1,000원 이상 비싸게 팔렸다. 라면은 4,500원까지 받는 곳도 있다. 음식과 물을 손님이 직접 챙겨야 하는 ‘셀프서비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체감 가격은 더 올라간다. 휴게소 음식의 품질에 대한 조사는 없지만 시중 음식점에 비해 낫다고는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매장 업주와 관련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도로공사가 나서서 재임대 구조를 바꾸거나 최소한 매출 배분 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고속도로휴게소협회는 휴게소 음식매장과 시중 음식점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운영업체가 화장실 주차장 등 시설 유지 관리 비용 뿐만 아니라 관련 세금이나 전기 수도 이용료도 모두 부담하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매장 업주들은 아무런 책임이나 부가 비용 없이 장사를 하는 것인 만큼 매출액의 절반 정도만 손에 넣는다고 불평해선 곤란하다고도 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도 “도로공사가 받은 임대료는 주차장 등 편의 시설을 확충 등에 모두 재투자하고 있다”며 “현재의 임대 구조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장경수 의원은 “도로공사가 전국 140개 휴게소를 65개 운영업체에 위탁 해놓고 시설의 위생, 안전 등의 부분에만 신경을 쓸 뿐, 휴게소 음식 등의 가격이나 품질에는 손을 놓고 있다”며 “세금으로 지어진 시설인 만큼 공익 차원에서 스스로 휴게소운영업체에 대한 임대료를 줄이고, 운영업체도 납품업자에 대한 자릿세를 감하도록 유도하는 등 이용객 입장에서 운영 등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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