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끝내 낙마했다. 이 총장은 15일 “원만한 사태 수습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두 달 가까이 끌어온 논문 표절 의혹 논란은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 총장 사태는 온갖 음모론과 함께 계파간 이전투구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 고려대는 실추된 이미지 회복과 내부 갈등 치유라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특히 고려대가 표절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기로 해 사태의 본질인 진실 규명은 미제(未濟)로 남게 됐다.
이 총장 사퇴 결심 왜?
이 총장은 9일 전체교수 신임투표를 제안할 때만 해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표절을 인정할 수 없으며 총장의 진퇴 문제는 구성원의 총의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승부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중립적 다수를 끌어 안아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노림수’와 달리 ‘학문윤리 문제를 여론몰이식 해법으로 풀려한다’는 반감이 확산됐다.
문과대와 정경대 등의 투표 거부 성명과 교내ㆍ외의 사퇴 요구 등 역풍은 거셌다. 급기야 학교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우회는 15일 “조직의 장(長)으로서의 영(令)도 서지 않는다”며 사퇴를 촉구하는 결정타를 날렸다. 이 총장은 결국 직무 수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사퇴 결심을 굳혔다.
당선에서 사퇴까지
이 총장은 비(非) 고대(서울대 공대) 출신임에도 학문적 업적과 시민단체 활동으로 쌓은 명망을 바탕으로 4년 간 고대호(號)를 이끌 수장으로 낙점 받았다. 그러나 취임 엿새 만인 지난해 12월26일 교수 시절인 1980년대 중반 교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2편 등이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루한 공방전에 휘말렸다.
교내 평교수 협의체인 교수의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고, 2일 ‘논문 중 6편은 표절, 2편은 중복 게재’라는 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와중에 이 총장의 ‘사퇴 압력설’ 제기와 조사위 운영과 조사 방식을 둘러싼 교수의회 내부의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면서 최종 결정은 재단 이사회로 넘어갔다.
이 총장은 9일 거취 문제를 논의키로 했던 이사회 전체회의에 앞서 신임투표 카드를 전격 꺼내 들었다. 하지만 14일 투표결과 88.7%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 투표율이 40%를 밑돌자 그는 ‘신뢰 상실’ 기류를 감지하고 사퇴 수순을 밟게 됐다.
고대의 앞날은
이 총장의 사의를 수용키로 한 재단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사의를 밝혔던 13명의 처장단은 이를 유보키로 결정해 사태는 표면상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현승종 재단 이사장이 “거취 문제가 해소된 만큼 표절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혀 진실 규명이라는 당초 의지는 크게 퇴색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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