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ㆍ13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한국과 미국이 고비 때마다 큰 활약을 했다는 얘기가 참가자들과 그 주변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한미 모두 2ㆍ13합의를 성공적으로 평가한다는 방증이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5일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이런 뒷얘기를 공개했다. 천 본부장에 따르면 북측은 처음 연간 전력 200만㎾에 해당하는 지원을 요구했다. 중유로 환산하면 350만~400만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누구도 이를 진지하게 듣지 않자 나중에는 중유 200만톤으로 줄였다.
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결국 북측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천 본부장과 만나 “100만톤은 꼭 가져가야 하니 만들어 달라”고 사정했다. 천 본부장은 “핵 시설 폐쇄로는 50만톤도 불가능하니 핵 폐기까지 하겠다고 약속하면 설득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진지한 협상이 시작됐다. 천 본부장은 나머지 4개국을 상대로 “북측이 많이 요구하니 의무를 늘리면 그게 오히려 더 낫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것이 협상 타결의 원동력이 됐다. 결국 북한과는 불능화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조선중앙통신이 핵 시설 임시 가동중지라고 표현해 논란이 야기된 불능화에 대해 김 부상은 황소를 거세하는 것에 비유했다. 자신들의 통근 자세를 자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달 북미 베를린회동에서의 합의를 2ㆍ13합의의 밑바탕으로 소개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베를린회동 때 북한이 취하기로 약속한 조치의 내용을 들은 뒤 협상 계속을 추인했다고 한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방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강한 어조로 “핵 무장한 북한은 미국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의 문제”라고 압박해 중국이 북한을 움직이게 한 것이라며 강조했다.
또 베를린회동은 일종의 ‘밀사’를 통해 미국이 먼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6자회담 미측 대표단의 일원인 한국계 빅터 차 백악관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북측인사를 우연히 만나 비공식 대화를 가진 것이 베를린회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미국의 한 외교관이 지난해 12월 6자회담 후 베이징(北京) 주재 북한 대사관을 비밀리에 방문,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의 해결 용의를 전한 게 베를린회동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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