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간 돈 거래에서 이자가 사회통념을 넘어설 정도의 지나친 고리(高利)라면 한도 초과 부분의 원리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이미 지급한 원리금 중 일부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이미 지급한 원리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옛 이자제한법 관련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로 고리 사채 피해자들이 피해금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15일 오씨가 돈을 빌린 심모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대여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적정 한도를 초과하는 이율로 원리금을 받은 것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얻은 것인 만큼 대출자는 원리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씨는 1999년 심씨등에게 연 486%의 고리로 3,203만원을 빌려주고 1년 동안 원리금으로 무려 1억1,000만원을 받았다. 오씨는 2001년 2월 심씨 등에게 연 243%의 이자율로 추가로 1,300만원을 빌려주었으나 심씨 등이 갚지 않자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심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1999년 3,203만원을 빌렸다가 지나치게 높은 이자로 1억1,000만원이나 갚았기 때문에 2001년 빌린 돈을 포함하더라도 오히려 원리금 일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1988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2001년 빌린 1,300만원의 경우 연 66%(대부업법 준용)를 초과하는 원리금은 갚지 않아도 되지만 이미 변제한 1억1,000만원은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고, 심씨 등은 “납득할 수 없다”며 상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례 변경에 따라 1998년 이자제한법(이자제한선 연40%) 폐지 이후 현저히 불리한 상황에서 고리의 원리금을 지급한 피해자들은 소송 제기를 통해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실제 현존하는 고리 관련 법령은 대부업체에 한해 연 66%로 제한 적용되는 대부업법이 유일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폭력배까지 동원되는 추심과정의 서민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또 지난해 법무부가 추진했다가 경제부처 등의 반대로 한 차례 무산된 이자제한법 부활 움직임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모든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대여금의 민사상 소멸시효(불법 사실 발생 후 10년)가 만료됐거나 이자제한법 폐지 이전에 발생한 사안은 구제가 어렵다.
개별 사안에 따라 적정 이자율도 달라질 수 있다. 실제 대법원은 판결문에 적정 이자율을 명시하지 않은 채 하급심에서 사안별로 결정하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전에 법적 조언을 충분히 얻은 뒤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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