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북핵 해결을 위한 실질적 이행조치가 합의되었다. 2005년 9ㆍ19 공동성명 이후 1년반 만이다. 사실 북핵문제 해결의 답은 이미 다 나와 있었다.
문제는 해답을 실천하는 구체적 이행조치였고 이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그동안의 6자회담은 번번이 결렬되고 말았다. 2005년 11월의 1단계 회담 이후 3차례의 힘겨운 회담을 지나고서야 초기조치에 대한 극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 2ㆍ13 합의는 의미있는 첫걸음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휴지조각 신세를 면치 못했던 9ㆍ19 공동성명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사실상의 진입과정'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즉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이라는 초기단계를 지나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의 실제적 '불능화' 조치를 북이 수용함으로써 9ㆍ19의 핵심 목표인 '핵폐기' 과정으로 진입하는 의미있는 실천이 가능해진 것이다.
단순한 가동중단을 넘어 접근이나 수리를 허용하지 않고 핵심부품을 뜯어내 해체하는 불능화 조치는 향후 북한의 미래 핵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유력한 조치임에 분명하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비교할 때 다자간의 구속력 있는 합의라는 점과 실질적 핵폐기를 목적으로 한 초기조치로서 불능화를 명확히 한 점은 분명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핵시설 폐쇄 봉인과 이후 불능화 조치의 진전에 따라 대북 중유 제공을 단계적으로 연동시킨 것 역시 북한의 성실한 이행을 압박하는 의미있는 합의사항이다.
또한 대북 지원과 관련해서도 5개국의 평등 분담 원칙을 명시한 점은 한국의 일방적 퍼주기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취하는 초기조치의 댓가로 중유를 비롯한 대북 경제지원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북미간 양자대화를 합의한 것 역시 9ㆍ19 공동성명의 실질적 이행을 가능케 하는 조치로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가시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과 경제봉쇄를 해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대북 경제지원에 공동으로 참여키로 합의한 것은 향후 북한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적대관계를 해소해 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6개국 장관급 회담 개최를 합의한 것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고위급의 정치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번 2ㆍ13 합의가 핵폐기와 북미관계 개선을 향한 의미있는 첫발을 내딛었음은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아직은 첫걸음일 뿐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당장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이냐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핵시설 불능화로 미래의 핵은 제거할 수 있지만 이미 확보한 핵물질과 핵무기 등 '과거'의 핵을 해체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은 난제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만의 결단으로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핵폐기 과정에 이르는 매 단계별로 미국의 응당한 상응조치가 있어야만 북은 핵폐기의 결단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폐기의 댓가가 실제적으로 유용한 것임을 인식하게 해줘야만 북한은 핵보유 대신 핵포기의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다.
● 남북관계 복원에 박차 가해야
이번 합의로 핵문제 해결에 의미있는 '출구'가 열리게 된 만큼 남북관계 복원에 박차를 가해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에 따른 대북 경제지원에 국제사회가 동의한 만큼 작년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식량과 비료 지원을 재개하는 문제도 이제는 훨씬 우호적인 조건을 맞게 되었다.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우리의 주도력과 대북 지렛대를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핵문제 진전 이후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등 급속한 정세 변화의 가능성을 감안할 때 결코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이다.
김근식ㆍ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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