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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튀기는 ‘권력’안방을 장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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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튀기는 ‘권력’안방을 장악하다

입력
2007.02.1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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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타령이 사라졌다. 불륜도 없고, 재벌 2세도 없다. 상큼한 트렌디(trendy)도 아니고, 포복절도할 코미디도 아니다. 그래도 시청률이 50%를 넘나든다. 안방극장을 장악한 ‘권력’ 때문이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든, 대한제국의 복권을 꿈꾸는 판타지물이든, 전문용어를 설명하는 자막이 수시로 뜨는 메디컬 드라마든 상관 없다. 주인공은 모두 ‘권력’이다.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sticus), 그리고 드라마

요즘 드라마를 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실감 난다. 다른 어떤 드라마적 요소도 ‘권력투쟁’이라는 코드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장수’하고 있는 MBC의 <주몽> 을 보자.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전개되는, 지금은 빼앗겨 버린 대제국의 건국 서사시. 이쯤 되면 고난을 이겨내고 웅비하는 영웅의 로망, 그리고 거기 얽힌 아름답고 아련한 러브스토리가 주제가 돼야 한다. 그게 지금까지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송일국의 선 굵은 연기가 빚어내는 주몽의 캐릭터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부분에 불과하다. 초ㆍ중반 드라마를 이끌어 간 것은 대소 영포 주몽 세 왕자 사이에 벌어진 왕위 계승 투쟁이었다. 금와왕과 대소의 권력다툼이 이어지고,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동맹이었던 주몽과 소서노의 왕권을 둘러싼 갈등이 주가 된다.

'궁’s'도 마찬가지다. 전작에서 대박을 터뜨렸던 윤은혜 주지훈 송지효의 ‘삼각 멜로라인’ 대신 황권을 둘러싼 암투가 이 드라마의 핵심 코드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궁> 의 알콩달콩한 사랑다툼이 재현되기를 바랐던 시청자들은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다. 계승자가 없는 황실에 강화도령 철종을 연상시키는 이후(세븐)가 등장하고, 황실의 실력자 효장대공의 아들 이준(강두)과 권력투쟁을 벌여 나간다.

<하얀거탑> 은 권력의 벌거벗은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하얀 가운 속에 가려진 권력욕과 그것을 위한 암투가 속속들이 까발려진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병원은 인술(仁術)이나 현란한 의료기술의 장이 아니라, 각 파벌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쟁투의 장이다. 그 속에서 출세욕에 가득찬 의사 장준혁(김영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 드라마를 읽는 독법이다.

마키아벨리아니즘(Machiavellianism), 세상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드라마가 이렇게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드라마가 대중의 바람과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반사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하얀거탑> 의 한 장면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이란 게 그렇게 간단명료하지 않아… 싸움할 때 필요한 게 뭐야? 힘이야 힘. 그리고 돈이 바로 힘이야.” 2007년 한국사회에서 민 원장의 이 대사를 자신 있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의 권력은 철저히 마키아벨리주의를 따른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적 코드가 시공을 뛰어 넘어 한국의 드라마 속에 내재돼 있다.

이런 코드는 <주몽> 에서 왕권을 놓고 대립하던 주몽과 소서아가 결국 ‘정략결혼’을 하는 스토리를 생산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본 막부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런 스토리전개 자체가 큰 변화다. 그만큼 드라마 제작진도 시청자도 ‘권력화’했다는 반증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한 시청자 게시판엔 이런 글이 올라 있다. “오랜만에 ‘인간’이 있는 드라마가 나왔다. 정의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진짜 ‘드라마 같은’ 얘기다.” 현실사회에서 드라마틱한 권력투쟁이 계속되는 한, 권력투쟁을 다룬 드라마의 인기도 계속될 것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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