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당 2억원을 넘는 고급 수입차 시장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메르세데스-벤츠가 휩쓸었다. S500(2억660만원)이 691대, S600(2억6600만원) 219대 등 모두 933대를 팔아 시장 점유율이 전체(1,030대)의 90.6%에 달했다.
그 뒤를 이은 아우디 A8 6.0 콰토르, BMW760 등은 각각 20여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작 재미를 본 것은 도요타의 렉서스다. 이 차는 작년에 6,581대가 팔려 5만대를 넘은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2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10여년 전 미국을 덮쳤던 '렉서스 신화'가 한국에서 재현된 셈이다.
▦ 지난 9~10일 독일에서 열렸던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은 '벤츠와 렉서스의 대결'로 표현됐다. 최근 1년 동안 유로화 대비 엔화 가치가 15% 가까이 떨어지는 바람에 세계시장 경쟁력이 급락한 독일 등이 일본에 환율조정을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별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저' 문제는 공식의제에도 오르지 못했다. 엔-달러 환율의 상대적 안정 위에서 '강한 달러' 정책을 펴온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고, "엔저는 경제가 디플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장의 판단을 반영한 것"이라는 일본의 설득도 주효했다.
▦ 엔저의 배경은 미국(5.25%)과 유럽(3.25%)보다 월등히 낮은 일본의 초저금리(0.25%)다. 일본은행이 금리인상을 시도할 때마다 재무성 등이 "중앙은행은 정부의 정책목표를 따라야 한다"고 억누른 결과다.
덕분에 신바람난 것은 기업들이며 '일본 상장기업들의 경상이익이 4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도요타는 2006회계연도에 '엔저 효과'만으로도 2,000억엔 이상의 이익이 늘어 일본기업 중 사상 최초로 '순익 1조5,000억엔 시대'를 열 전망이다.
▦ 이로 인해 죽을 쑤는 것은 유럽기업뿐만 아니다. 독일 자동차업체처럼 한국 자동차업체가 환율 직격탄을 맞은 것은 다 알지만, 그 역풍은 이제 전자 등 광범위한 산업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미 중국시장에선 샤프 마쓰시타 등 일본업체의 LCD-TV가 한국제품 가격의 70% 안팎에서 출시돼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으며, 그 여세는 동남아와 인도로 향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손발을 맞춰 '엔저'를 즐기는 일본을 보면, 지난해 사상 최대의 대일 무역적자와 5년 만에 감소한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한 우리 경제의 장벽이 만져지는 듯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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