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시설 폐쇄(shut down)ㆍ불능화(disablement)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 방안은 ‘성과급 제도’ ‘다양한 지원 옵션’ ‘균등분담의 원칙’이 핵심이다.
북한이 이른 시간 내에 불능화 조치까지 마치고 핵폐기를 시작한다면 더 많은 지원을 얻어갈 수 있도록 판을 짰다. 중유가 아닌 다른 방식의 지원도 가능케 했다.
총 지원 규모는 중유 100만톤 상당이지만 균등분담 원칙인 만큼 한국의 부담은 일단 중유 20만톤 규모에 그칠 전망이다.
통일부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 합의 직후 대북 중유공급 문제를 언급하며 중유 50만톤 제공에 2,5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계산했다. 구입 대행과 수송비용까지 합쳐 톤당 500달러 수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유가에 변화가 있었던 만큼 새로운 셈법이 필요하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13일 현재 중유의 국제시세는 톤당 300달러 수준이다.
따라서 100만톤의 중유를 지원한다면 총 3억달러가 소요되고, 부대비용을 10~20%로 본다면 3억3,000만~3억6,000만달러가 북한 핵시설 폐쇄ㆍ불능화 대가로 쓰이게 된다. 한화로 따지면 약 3,200억~3,450억원이다.
물론 모든 지원이 중유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전력 등 다른 에너지와 경제적ㆍ인도적 지원도 가능하다.
정부 당국자는 “중유 지원을 꺼리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중유 100만톤의 값을 따져 환산한 액수 만큼 다른 것을 지원해도 되는 길을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비용 부담을 똑같이 나누기로 했기 때문에 각국은 중유 20만톤(약 600억원)에 해당하는 지원만 하면 된다.
중유를 주고 싶으면 중유를 주고, 600억원에 해당하는 발전기를 설치해주고 싶다면 북한과 협의해 그렇게 하면 된다. 94년 제네바합의 당시의 뼈아픈 기억 때문에 중유 현물공급을 꺼리는 미국이나 자신들에게 남아 도는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초안부터 반드시 동등분담 원칙을 강조해 치고 나갔다”고 말했다. 제네바합의 이후 경수로 건설 당시 한국이 70%를 부담하는 등 ‘덤터기’를 쓴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혼자 당할 수 없다는 각오였다.
“또다시 정부가 나서 북한에 퍼주는 것이 아니냐”는 국내 보수진영의 반발도 의식해야 했다. 그래서 정부는 끝까지 균등분담 원칙을 고수했고 부담은 5분의 1에 그쳤다.
정부는 또 북한의 성의 있는 핵폐기 절차 개시를 위해 제공되는 초기 5만톤 상당의 중유 지원은 떠맡을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화로 약 150억원이 소요된다.
어차피 5만톤을 먼저 내면 나중에 15만톤 분량만 채우면 되고, 연간 1,000~2,000억원이 소요되는 쌀ㆍ비료 지원에 비해서도 소량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기간에도 나타났듯 북한을 비롯한 5개국은 대북 전력 200만㎾ 송전을 한국 정부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핵폐기를 끝낸 다음에야 전력 송전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생각은 다르다.
만약 이번 합의가 진전돼 북한이 핵폐기까지 가게 된다면 1조5,000억원 안팎의 대북 송전시설 건설비용과 연간 6,500억~8,000억원에 이르는 송전비용도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게 부담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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