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에너지 균등분담 장치 마련해야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9ㆍ19 공동성명보다 더 구체적이고 진전된 약속을 했다는 것은 평가할만하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폐쇄 조치, 모든 핵시설 신고, 검증, 폐기 등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번 회담 합의로 초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뒤집어 보면 앞으로 더 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합의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핵 포기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북한이 모든 핵 관련 프로그램 및 시설을 철저히 신고하도록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이미 확보해 놓은 핵물질과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실제로 100%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일부라도 감출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검증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국제사회가 철저히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앞으로 철저한 검증 체제를 만들 수 있도록 당사국들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핵 문제에서 공동합의문 등은 어디까지나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이 실질적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행동으로 전환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
또 북한은 앞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상당한 인센티브를 기대할 것이고, 이를 충분히 확인한 뒤에야 다음 수순으로 옮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시켜야 한다.
한국이 유의할 점은 대북 에너지 지원에서 5개국 균등 분담 원칙을 당사국들이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느 한 국가라도 자국 사정 등을 들어 빠지는 상황이 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핵무기 해체' 워킹그룹 역할 중요
이번 6자회담 합의로 북핵 문제에 관해 거의 모든 해결책이 담겨 있는 9ㆍ19 공동성명을 실천할 수 있는 진입 단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1994년 제네바 합의처럼 단순히 핵 동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핵 불능화까지 명시한 것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로 가는 첫 단계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동안 북한과 미국은 ‘북핵 폐기와 에너지 제공,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뻔한 해답을 놓고, 상대가 먼저 행동에 나서길 바라며 신경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북미 양국이 동시 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함으로써 상호 신뢰가 쌓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은 2004년 2차 6자회담 이후 미국이 대북 식량ㆍ에너지 지원에 동참하기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북한은 이번 합의에서 미국이 대북 지원 참여를 명시화한 것에 대해 미국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북 적대정책 철회의 가능성을 내보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 이후 6자회담 당사국 외무장관 회담을 열기로 함으로써 이후 워킹그룹에서 기술적 문제들을 큰 틀의 정치적 합의로 풀어낼 수 있는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핵 불능화 조치는 미래의 핵을 막는 것이지 과거의 핵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 이미 보유한 플루토늄과 미사일을 이용해 전략적 결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 해체를 위한 워킹그룹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문제를 풀려는 적극적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北의 이행 보면서 점진적 보상을
북한이 6자회담 합의 내용을 성실히 이행할지 의문이다.
1994년 북미 양자 합의와 2005년 9ㆍ19 공동성명도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전제로 했다. 하지만 두 번의 합의는 모두 파기됐다.
94년 합의는 도중에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깨졌고, 9ㆍ19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깨졌다. 이번 6자회담 합의 내용 역시 제대로 지켜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완전한 핵 폐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고농축 우라늄을 폐기할지,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모두 북한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겼다.
북한이 영변 외의 다른 핵시설과 핵실험에 사용된 시설, HEU 프로그램 등을 철저하게 신고하느냐도 관건이다. 북한이 모든 것을 신고ㆍ폐기한 뒤 사찰을 받기까지 몇 차례 더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매 단계에서 이슈를 만들어 협상에 나올 수 있다.
북한이 일단 급한 대로 6개월 내지 1년 동안 에너지와 물질을 지원 받은 뒤 외부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되면 과거로 되돌리면서 재협상을 요구할지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이 몇 년을 더 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회담 결과를 지나치게 폄훼할 필요도, 낙관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번 합의를 출발로 봐야 한다. 긍정적 성과로 보기에는 불투명한 요소가 너무 많다.
북한의 이행 내용을 지켜보면서 북한에 대한 보상을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이 앞장서서 물질적, 정치적 지원을 해야 북한이 더 잘할 것이라는 것은 이상론이다. 이를 경계하고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공조를 통해 차분하게 대처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 김지성기자 jskim@hk.co.kr
■ 게리 새모어 美외교협회 부회장/ 이젠 핵폐기 세부사항 논의해야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에 나서 합의를 이룬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합의를 이루기 위해 3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대략 8개의 핵무기가 더 만들어졌고 한번의 핵무기 실험이 있었다.
합의를 이루기에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너무 늦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합의를 본 것은 아주 합의를 보지 못하거나 너 늦게 합의를 보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다.
이번에 합의한 대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중유 공급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주의할 대목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미 의회가 중유를 미국이 부담한다는 사실에 강력히 반발했던 사실이다.
이번 합의의 내용은 긴 기간에 걸친 단계적 핵폐기를 시작하는 조치로 이해한다. 중국과 한국이 지지한 합의안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워싱턴이나 평양이 실제로 그런 조치들을 이행하기 위해 함께 협력할 준비가 돼 있는지가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 양측의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만나서 궁극적인 핵폐기 합의에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논의해야 한다. 북한이나 미국이 더욱 진지해 져야 한다.
북핵 폐기는 바람직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중간 단계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제한하거나 핵무기를 실어 나를 미사일의 발사거리를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비관적으로 보면) 이번 베이징 합의는 핵 폐기로 이어질 조치를 추후 협상하기로 약속한 동결 합의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나중에 협상에 응하기로 한 약속 등은 매우 가치가 없고 무익한 것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국제부
■ 이즈미 하지메 日시즈오카현립대 교수/北美관계따라 납치문제 진전될 것
오늘 합의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고 말하고 싶다. 핵 포기를 향한 초기 단계의 거래가 성립한 것이고, 거래가 성립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북미관계의 진전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진전이 있으려면 미국이 잘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배려를 한다면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물질적인 것을 얻는 것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더 원하고 있다. 이번에 북한이 물질적으로 받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잘되면 일본과도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일본정부는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합의는 일본 정부를 특별하게 궁지로 몰아 넣지 않을 것이다. 초기단계에서 중유 지원은 5만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반드시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일본은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가 진전된다는 것이다. 납치문제도 진전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일본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북미관계가 진전되면 납치문제도 진전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도 문제 없이 지원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은 자신의 이익이 된다면 납치문제도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5년전에 그것을 목격했다. 북한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이해득실을 따져 납치문제에 대한 태도를 크게 바꾸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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