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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견디다 못한 생계형 범죄 '한국판 장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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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견디다 못한 생계형 범죄 '한국판 장발장'

입력
2007.02.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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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윤모(32)씨는 아내와 다섯 살 딸을 둔 가장이다. 윤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전기 단자함 덮개 등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60대 후반의 부모를 모시고 조카까지 건사해 온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변변한 직장 없이 놀이공원 등에서 하루벌이 생활을 했다. 빠듯한 수입 탓에 생활은 갈수록 쪼들렸고 2003년 몸을 크게 다친 뒤에는 힘 쓰는 일마저 제대로 못했다.

결국 윤씨는 2004년부터 카드 빚을 내서 모자란 생활비를 채웠고 빚은 어느새 1,000만원 가까이 쌓였다. 지난해 말에는 텔레마케터 회사에 어렵게 취직했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다는 이유로 이내 쫓겨났다. 이후 그는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팔았지만 ㎏당 고작 몇 100원 받아서는 생계를 꾸리기가 너무 빡빡했다.

그는 지난달 말 고물상 주인한테 “스테인리스가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도둑질해서 팔아먹으라는 뜻이었다. 그는 결국 스테인리스를 찾아 나섰고 주택가 건물 벽에 달린 전기, 전자, 인터넷 단자함 덮개를 발견했다. 가난하지만 범죄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그는 잠시 망설였으나 카드 빚을 떠올리며 도둑질을 감행했다. 드라이버를 몇 번 돌렸더니 단자함은 쉽게 뜯어졌고 몇 개 팔자 10만원이 생겼다.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유혹은 윤씨를 대담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낮에 서울 관악구 신림ㆍ봉천동 일대 주택가와 상가 밀집 지역을 다니며 나흘 만에 200개 넘는 스테인리스 단자함 덮개를 뜯어냈다. 이를 팔아 받은 돈 100만원(㎏당 1,700~2,000원)은 카드 빚 막기와 생활비에 썼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경기 시흥에 있는 고물상까지 가서 팔기도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윤씨는 12일 단자함 덮개가 너무 많이 없어진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순찰을 돌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서에서 아내는 “남편이 그럴 리 없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윤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윤씨처럼 생활비를 마련하려다 범죄자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경비업체 에스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생계형 범죄’로 추산되는 침입범죄가 2005년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스테인리스를 포함해 비철금속을 노리고 창고나 야적장에 침입한 사건은 전년 대비 268%나 늘어났다. 담배나 생활필수품을 훔치기 위해 슈퍼마킷과 소규모 점포에 침입한 범죄 역시 90% 증가했다. 전체 침입사고 증가율이 5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생계형 범죄가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주택 관련 침입범죄 역시 2005년에 비해 63% 늘었다.

관악경찰서 이건화 형사과장은 “생활비와 카드 빚에 쪼들리는 서민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몇 번만 해야지’ 라며 생활주변을 범죄 장소로 택한다”며 “하지만 갈수록 수법도 대범해지고 맨홀 뚜껑, 전선 심지어 학교 명패까지 훔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절도범은 초범이라도 대부분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아주 작은 액수가 아니면 선처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송보경ㆍ이경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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