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학자들이 미물(微物) 곤충에게 보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곤충에게서 배우겠다’는 자세로 첨단 곤충 과학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양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며 어느 때보다 과학ㆍ기술의 연구개발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일본이 로봇과 하이브리드엔진에 이어 곤충과학에서도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센터의 간자키 료헤이(神崎亮平) 교수 연구실. 로봇공학 생물학 의학 정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는 이 곳에서는 곤충의 탁월한 기능을 과학기술에 접목시키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곤충의 뇌는 10만개 정도의 작은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1,000억개의 인간의 뇌에 비하면 단순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무시는 금물. 곤충의 뇌는 고도의 감각수용 기능과 기억ㆍ학습 기능, 행동 지령ㆍ제어 기능을 어떤 생물보다도 뛰어나다. 바꿔 말하면 곤충의 뇌는 초경량화, 초슬림화된 첨단 구조로 곤충이 수억년의 역사를 견디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뇌의 명령을 전하는 신경시스템과 일을 실행하는 몸체 등은 간소하면서도 합리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 과학자들이 참고로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자키 연구소는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곤충의 뇌를 분석하고, 조작하는 연구와 이를 토대로 생체ㆍ기계 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소는 최근 누에나방의 행동양식을 구현하는 곤충조종형로봇을 개발했다. 누에나방의 행동을 87% 이상 재현한 로봇이다. 연구팀은 역으로 이 로봇의 행동을 조작해 누에나방의 반응을 관찰하는 등 새로운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연구팀은 궁극적으로 곤충의 신경과 근육, 행동 등에 대한 생체정보를 추출해 로봇과 기계에 접목하는 생체ㆍ기계 융합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팀은 곤충의 본능행동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사용해 자극을 수용하는 세포로 바꾸면 곤충이 특정 입력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뇌가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희미해지는 약점이 있는 반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연구팀은 뇌졸중 환자 등의 뇌 재활과 기억력 증강을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김철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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