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상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 도전의사를 밝힌 민주당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이 정작 미국 흑인들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미 시사주간 타임은 최신호(19일자)에서 최근 실시된 워싱턴포스트-ABC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의원이 당내 최강 경쟁자인 ‘백인’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보다 흑인 지지도에서 무려 40% 포인트나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타임은 그 이유에 대해 “많은 미국 흑인들은 오바마 의원을 흑인으로서 자신들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가 체화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를 거부한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미국 흑인들은 오바마 의원을‘흑인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바마 의원은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미국 내 흑인들보다 아프리카계 혈통에 훨씬 가까울 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에 흑인들은 터놓고 그를 지지하기를 꺼린다는 뜻이다.
타임은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토착주의’의 흉측한 얼굴을 드러내면서 매우 배타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미국의 흑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조상이 노예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에서 착취당한 노예여야 한다.
또 백인적인 요소가 적을수록 보다 진정한 흑인으로 간주되는 네거티브 방식이 한층 위력을 발휘한다. 흑인의 정체성을 이렇게 편협하게 좁혀 놓으면 노예의 자손이 아니라 케냐 지식인의 아들이고 백인 어머니에 의해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오바마 의원은 진짜 흑인이 되기에는 ‘자격 미달’일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바마 의원은 한때 흑인사회 민권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 법대를 나온 뒤 40대초에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에 오른 특급 엘리트이다.
타임은 흑인의 정체성 인식에 대한 이 같은 변화는 ‘비극’이라면서 강한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역사적으로는 ‘피한방울만 섞여도 흑인’이라는 식으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흑인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흑인들은 민권운동을 펼치는 과정 등에서 전 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또 흑인 이민자나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강한 유대감을 보였던 세계적 보편성을 스스로 갉아 먹고 있는 데에 비극의 원인이 있다고 타임은 지적한다.
이런 상황은 오바마 의원이 흑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오바마 의원은 10일 공식출마 선언을 할 때도 자신이 흑인임을 내세우지 않았고 자신의 성장배경을 특별히 언급하지도 않았다.
오바마 의원이 11일 아이오와주에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면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힐러리 의원과 사이에 설정한 대치전선은 이라크전이었다.
그는 힐러리 의원이 이라크전 개전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점을 상기시킨 뒤 “그 당시에도 전쟁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며 힐러리 의원의 판단착오를 부각시켰다. 그는 또 자신은 내년 3월을 목표로 한 이라크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안을 밝혔다면서 힐러리 의원 등에게 보다 명확한 이라크전 대안제시를 촉구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