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국 총선을 앞두고 좌파 신문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지넷 윈터슨이 칼럼에서 자못 용기 있는 고백을 했다.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후보를 지지했다며 용서를 구한 것이다.
이게 용기 있는 고백인 것은 장기집권으로 이어진 대처의 승리는 진보좌파에 악몽과도 같은 좌절을 안긴 때문이다. 이에 비춰 윈터슨의 고백은 스스로 농담조로 걱정했듯이 칼럼계약 해지로 이어질 만하다.
그는 당시 자신이 시골서 자라 옥스퍼드 대학에 갓 들어간 18살 소녀였던 점을 너그러이 헤아려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처를 지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빵 한 덩어리 값을 알고 있었다. 그건 옥스퍼드에서 우리 둘 뿐이었다." 아마도 강연 만남에서 서민 출신인 대처가 민생을 잘 이해하고 돌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모양이다.
● 정치적 치장에 가린 진면목
언뜻 선거에는 민생이 관건이라는 진부한 주장을 편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물정에 어두워 대처를 지지한 잘못을 고해한 데서 보듯, 정권을 다투는 정치세력과 후보들의 위선적 치장에 감춰진 진면목을 잘 분간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시골뜨기 윈터슨을 감동시킨 대처는 시장과 경쟁 논리를 앞세운 보수개혁으로 영국병을 치유하고 경제를 되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복지사회의 틀을 허물어 여성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반감이 사회 저변에 뿌리깊다.
그렇다고 이 칼럼이 대처 보수당의 위선을 지적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블레어 총리의 집권 노동당이 그에 못지않게 여성과 취약계층을 외면하는 우파적 경제사회 정책을 지속한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얼마간 성장과 부를 일궜으나 국민 다수의 행복감은 과거보다 오히려 낮아진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좌든 우든 진정으로 민생과 복지를 돌보는 정치세력과 후보를 선별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영국 정치 얘기가 길었던 것은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세력과 유력 주자들도 앞 다퉈 경제 살리기와 민생과 복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쪽은 물론이고, 지리멸렬한 듯한 열린우리당 쪽에서도 머지않아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떠들 게 틀림없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늘 강파른 논리로 다툰 것은 잊은 듯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비책을 선전할 것이다. 이게 과연 진정한 의지와 경륜에 기초한 것인지 분별하는 어려운 과제를 사회가 함께 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 방책으로 낡은 대처리즘을 모방한 보수개혁을 내세우던 유력 주자들이 막연하나마 중도 이념을 표방하는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물론 여러 여론조사에서 사회 이념성향이 중도로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진 데 따른 변신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사회 분야의 진보적 개혁을 바라는 여론이 압도적인 데 놀라 황급히 보수 얼굴을 중도 이념으로 치장해 가리려는 인상마저 짙다. 이런 변화에 어느 보수 논객은 "중도는 국가이념이 될 수 없다"는 괴상한 논리로 반박, 자칫 시끄러운 논란이 이어질 조짐이다.
● 중도는 헌법적 이념ㆍ질서
그러나 적어도 사회경제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 이념의 우위를 따지는 것 은 쓸데 없는 짓이다. 우리 헌법은 이미 보수와 진보 이념을 아우르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복지국가주의를 근본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지향하는 사회경제적 기본질서가 중도인 마당에 좌와 우, 어디로 가야 옳다고 멱살잡이 하는 것은 무지한 행태일 뿐이다.
대선 유력 주자들이 헌법적 가치를 거론하며 중도를 표방하는 것은 사회와 국민이 진작에 깨친 사리를 뒤늦게 되뇌는 형국이다. 물론 정치 지도자의 성공은 사회와 국민을 얼마나 닮는가에 달렸다는 말을 떠올리면 바람직하다.
다만 그 것이 값싼 치장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회와 국민이 바라는 구체적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하려는 진정한 도덕적 의무감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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