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 벌어지던 1997년 여름. 박찬종 후보가 느닷없이 이회창 후보를 겨냥, "지구당 위원장에게 수천만원씩을 뿌린 의혹이 있다"고 주장해 파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박 후보는 거듭된 증거제시 요구에 시간만 끌며 아무 것도 내놓지 못했고, 결국 김영삼 대통령에게 증거를 넘기겠다며 문건을 전달했으나 이는 의혹의 내용을 담은 서한에 불과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연상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법률특보인 정인봉 변호사는 9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도덕성과 재산 형성과정 등 3~4건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 왔다"며 "13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겠다"고 말해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이 전 시장측은 "공개할 게 있으면 하라"고 정면으로 응수했다. 또 박 전 대표 캠프는 회견을 만류했다. 그러자 일단 공개를 미루겠다던 정 변호사는 12일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공개시기를 3월말께로 늦추겠다"고 했다.
당의 경선준비기구에 관련 자료를 넘겨준 뒤 검증 수위가 낮으면 그 이후에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건강한 후보를 바라는 한나라당을 위한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도대체 무슨 짓인가. 그렇게 중요한 자료가 있으면 공개해 검증을 받게 하면 된다. 혹시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나중에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 변호사의 행동은 이도 저도 아니다.
두 번씩이나 실체도 내놓지 못하면서 무언가 있다며 공갈만 쳤다. 속 보이는 수법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내려는 정상배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정 변호사는 누구를 검증하겠다고 큰 소리 치기 전에 저질 쇼를 벌인데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
염영남 정치부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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