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폭력’의 망령이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의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리그 경기 도중 관중 난동으로 경찰관 한 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난 이후 곳곳에서 폭력으로 인한 잡음이 빚어지고 있는 것.
# 정치문제 등 관련…각국 폭력대처 부심
12일 오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와 에르츠게비르네 아우에의 작센주 아마추어리그 경기에서도 800여명의 홈팬들이 0-3의 완패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려 42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글렌토란과 포터다운의 아일랜드컵 경기(2-2)가 끝난 뒤에도 양팀 서포터스들이 벨파스트 동부 지역에서 충돌했다. BBC에 따르면 부상자는 없지만 투석 등으로 차량이 파손됐다.
유럽에서 축구장 폭력으로 가장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나라는 단연 이탈리아다. 경찰관 사망 후 프로 리그와 대표팀 일정 등을 모두 취소한 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 주말 리그를 재개했지만 경기장 폭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축구장 폭력은 정치ㆍ경제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특성이 있어 완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경기장 폭력으로 악명을 떨치는 ‘울트라(Ultraㆍ축구 서포터스를 칭하는 이탈리아어)’가 악명을 떨치게 된 데는 정치, 경제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침체된 경제 등으로 인해 일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의 축구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빗나간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고, 일부 울트라들은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을 경기장에서 여과없이 표출하고 있다. 친좌파로 분류되는 리보르노 팬들은 체 게바라의 깃발을 들고 경기장에 입장하고, 친우파의 대표격인 라치오는 파시스트 흉내를 내는 식이다. 인디펜던트>
이탈리아의 128개 축구 클럽 가운데 42개가 특정 정치 노선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중 27개가 우파, 15개가 좌파 경향을 띄고 있다. 대립된 정치 성향을 띄고 있는 팀들의 대결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경기장 난동에 안이하게 대처한 이탈리아의 사법 체계와 각 구단도 ‘암세포’를 키우는 노릇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인터 밀란의 ‘울트라’인 마테오 사로니는 2001년 동료 9명과 함께 끌고 온 오토바이를 산시로 경기장의 그라운드에 던지는 소동을 일으켜 검거됐지만 1년간 경기장 출입 금지만 선고됐을 뿐 이후 두 차례 더 경기장 난동으로 검거되고도 무죄 평결을 받았다.
유럽에서 축구장 폭력을 모범적으로 해결한 나라로는 잉글랜드가 꼽힌다. 잉글랜드는 1989년 관중 95명이 사망한 ‘힐스버러의 비극’을 겪은 뒤 ‘테라스’로 불리는 입석 좌석을 모두 없애는 등 안전 조치를 대폭 강화, 이후 별다른 경기장 사고를 내지 않고 있다. 유럽 각국의 언론들은 이탈리아가 지난 경찰관 사망 사건을 계기로 ‘훌리거니즘’을 극복한 잉글랜드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40여년에 걸쳐 이어져 온 인습을 단절하는 데는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전망이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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