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슨 벽돌입니까? 빼서 다른 쪽에 붙이게." 얼마 전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자신을 범여권의 대선 후보로 영입해야 한다는 일부 여권 인사들에 대해 답한 논평이다. 아직 2007년 대선은 초입에 불과하다. 그러나 손 전 지사의 발언은 단언컨대 이번 대선에서 금메달을 딸 명대사 중의 명대사이다.
문제의 벽돌 보도를 접하는 순간 떠오른 것은 지난해 8월말 광주에 특강차 갔다가 만난 '5ㆍ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씨와의 대화였다.
5ㆍ18 이후 미국으로 밀항해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한 윤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유신총리인 김종필과 손을 잡는 것을 광주가 지지한 것을 비롯해 이후 호남의 정치적 행보를 지역주의라고 외롭게 비판해온 '광주의 이단아'이다.
● 광주호남의 손학규 영입론
그런 윤씨가 범여권과 광주의 운동권 출신의 여론주도층들 중 일부가 손 전 지사를 영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을 길이 안 보이는 바, 손 전 지사를 탈당시켜 세탁을 해 대선 후보로 내보내면 호남의 고정표 이외에 수도권과 중도보수적 표를 끌어올 수 있어 가장 승산이 있다며, 원칙도 없이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특유의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간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무시해 버렸다. 물론 손 전 지사가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고 한나라당 정치인 중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망국적인 반호남 지역연합인 3당통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승승장구하며 호남과 범여권에 줄곧 대립해 왔다.
게다가 아무리 먼 3등으로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의 경선에 나서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권 경선후보이다. 이 같은 사람을 일부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도 아니고 광주의 민주인사들이 영입하려고 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뒤 광주의 한 열린우리당 의원이 손 전 지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하고 나섰다. 게다가 호남 출신의 유력후보인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손 전 지사에 대한 기대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언론들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부상하고 있는 전북과 달리 광주에서는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손 전 지사가 정 전 의장을 제치고 범여권 후보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강력한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정 전 의장까지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권유하고 나섰다. 앞에서 지적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영입에 대해 "제가 벽돌이냐"며 펄쩍 뛰는 사람을 다른 지역도 아니고 광주가 범여권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충격을 넘어 코미디다.
● 충격 넘어서 코미디
최근 들어 손 전 지사가 개혁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는 등 독자행동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탈당과 범여권 후보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점에서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범여권과 광주 호남의 손 전 지사 영입론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시고 있는 셈'이다.
새뮤얼 베게트의 희곡 중에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것이 있다. 광주 호남에 손 전 지사 영입론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본인은 생각이 없다는데 손 전 지사가 마음을 바꾸어 벽돌이 되기로 마음을 고쳐먹기를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고도가 아니라 '손벽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설마 민주성지 광주의 다수 민심이야 그럴 리가 있겠는가.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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